PC가 20년 만에 '32비트'에서 '64비트'로 진화하게 됐다는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


올해 초 인텔이 64비트 칩을 출시,PC의 '두뇌'에 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는 64비트 체제를 갖추게 됐지만 '심장'인 OS는 여전히 32비트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S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일반 소비자용 64비트 버전을 내놓지 않은 게 원인이다.


PC 업체들은 "새로운 수요 창출을 MS가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시판 64비트 PC는 반쪽짜리


삼성전자 LG전자 델컴퓨터 주연테크 HP 등 PC 업체들은 최근 인텔의 64비트 CPU를 탑재한 데스크톱을 속속 선보였다.


그러나 모두 32비트 OS를 탑재하고 있어 '반쪽짜리 64비트 PC'인 셈이다.


칩이 64비트 기반이라도 OS가 64비트가 아니라면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64비트 OS는 널리 사용되는 '홈 에디션'이 아니라 판매 비중이 10%에 불과한 '프로페셔널 에디션'이다.


쉽게 말해 전문가용이라는 얘기다.


한국MS는 지난 5월 최초의 윈도 기반 64비트 OS인 '윈도XP 프로페셔널 x64 에디션' 영문판을 발표했고 7월 중순께 한글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MUI'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PC업계 한 관계자는 "MS의 '프로페셔널 에디션'은 '홈 에디션'보다 50% 이상 비싼 데다 사용법이 복잡해 일반인이 사용하는 PC에 탑재하긴 어렵다"며 "더구나 현재의 64비트 '프로페셔널 에디션'은 한글 지원도 완벽하지 않다"고 말했다.


◆진짜 64비트 PC는 내년 말에나


문제는 이처럼 '두뇌'만 있고 '심장'은 없는 기형적인 구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MS는 'XP 세대'에서는 64비트 OS 기반의 '홈 에디션'을 전혀 내놓지 않을 계획이다.


한국MS 관계자는 `"내년 말께 XP 계보를 이을 차세대 OS '윈도 비스타'가 나오면 '홈 에디션'을 비롯해 대다수 OS가 64비트 체제를 갖추게 된다"며 "현재 64비트 OS를 찾는 고객은 고도의 작업을 수행하는 전문가 등 일부에 한정돼 있어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PC 업체들의 얘기는 다르다.


PC업계 관계자는 "'64비트 OS를 탑재한 PC가 언제 나오느냐'는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설령 64비트 프로페셔널 에디션을 탑재한 PC를 시판한다 해도 관련 소프트웨어가 부족해 OS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래저래 손해 보는 건 애꿎은 소비자다.


'64비트 PC'를 구매한 소비자 가운데 상당수는 64비트 OS가 빠진 '무늬만 64비트 PC'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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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풀이] 64비트 PC


중앙처리장치(CPU)가 한번에 64비트씩 데이터를 처리하는 PC다.


칩과 OS를 제대로 갖춘 64비트 PC는 기존 32비트 PC에 비해 데이터 처리 속도가 1.3배 이상 빠르다.


또 연산처리 능력은 2의 32승에서 2의 64승으로 커져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무려 43억배로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