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씨 시집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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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온 소포’의 고두현(42) 시인이 두번째 시집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랜덤하우스중앙)를 펴냈다.첫시집이 나온지 꼭 5년만이고 등단한 뒤론 12년 만이다.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는 지난 2000년 이후 틈틈이 써온 72편의 시가 실렸다.
첫 시집과 달라진 점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품 구상의 모티프가 '소포'에서 '편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수동적인 입장에서 받은 '소포'를 매개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했던 시인은 이번 신작시집에선 '편지'라는 능동적인 의사전달 수단으로 순도 높은 그리움을 토로한다.
'마흔 고개/붐비는 지하철/어쩌다 빈 자리 날 때마다/이젠 여기 앉으세요 어머니/없는 먼지 털어가며 몇 번씩 권하지만/괜찮다 괜찮다,아득한 땅속 길/천천히 흔들리며 손사래만 연신 치는/그 모습 눈에 밟혀 나도 엉거주춤/끝내 앉지 못하고.'('빈자리'중)
'물미해안'은 시인의 고향인 경남 남해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가리킨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고향에 대한 시인의 각별한 사랑은 남해 특산물인 멸치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너에게/가려고 그리/파닥파닥/꼬리 치다가/속 다 비치는 맨몸으로/목구멍 뜨겁게 타고 넘는데/뒤늦게 아차,/벗어둔 옷 챙기는 순간/네 입술 네 손 끝에서 반짝반짝 빛나는구나/오 아름다운 비늘들/죽어서야 빛나는/생애.'('남해멸치'전문)
은근하면서도 해맑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이지만 냉정한 자본주의의 현실에도 눈을 돌린다.
'그리고 오늘/광화문 네거리에서/삼팔육 친구를 만났다/한잔 가볍게 목을 축인 그가/아주 쿨하게 웃으며/이렇게 말했다/주머니가 가벼우니/좆도 마음이 무겁군!'('돈'중)
그러면서 진실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발해 등 우리 역사의 지평을 더듬는 깊이까지 갖췄다.
'해맑고 아름답고 곧고 깊은 시'라는 신경림 시인의 호평도 사람과 세상,사회와 역사를 아우르는 작품의 밀도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인이 살고 싶은 세상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진미 생태찌개'에 속내가 담겨 있다.
'한 사람이 그 양반 참 진국일세 칭찬하고/또 한 사람이 아무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 하고/다른 한 사람은 왜 이제야 우리 만났느냐고 눈 흘기는/그런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그 집을 저는 아주 아주 좋아합니다.'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는 출간되자마자 교보문고 등 주요 서점 시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으며 1주일 만에 2쇄에 들어가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