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90년대 초 포스트모던 소설로 주목받았던 이 제목은 90년대 말엔 직장 사회의 유행어가 됐다. 경영난을 겪는 기업들이 직원들을 대규모로 내보내면서 직장에 남게 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 이렇게 불렀다. 불안에 떨면서도 나간 사람들 몫까지 일해야 하는 고통은 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어법에 불과했다. 직장에 남은 사람들은 곧 용기를 낼 수 있었다. 50대 이상이 사라지면서 생긴 빈 자리는 그들에게 오히려 고속승진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 사이 경제가 잠시 좋아지는 듯하더니 다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나라 전체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면서 '돈 잘 버는' 회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직원들을 내보내고, 있던 사람도 계약직으로 바꾸고, '핵심인재'에 집중하는 회사들이 늘면서 사라지는 사람들의 긴 줄이 다시 생겼다. 보낼 사람이 너무 많아 환송 회식은 하지 않는 게 새로운 관행이 됐을 정도다. 엊그제 나온 통계가 이 같은 추세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상장기업 직원들의 평균근속연수가 8년에 불과하다. 아주 빨리 회사를 그만두는 예외치를 빼면 입사후 퇴직까지 회사에 다니는 기간은 평균 12년밖에 안된다. 청운의 꿈을 품고 입사한 첫 직장에서 겨우 10년 남짓이라. 이제 '한 직장 20년'은 곧 전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세는 잘 해석해야 한다. 근속연수가 짧아진 데에는 새로운 원인이 추가됐다. 직장인들의 이동성이 높아진 탓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더 이상 회사에서의 '장수'가 의미없다는 얘기다. 살아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직하지 못했거나' 아직 앞으로의 비전을 찾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40대 언저리의 직장인들은 이 불안의 한가운데에 있다. 회사가 평생을 보장해주지 않는데 40이면 어디서든 부담스러워하는 나이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은 2003년 기준으로 68세까지 일하고 있다. 평균수명인 77세까지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일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앞으로 20~30년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가며 일 할 수 있는 확실한 커리어 계획이 없다면 어떤 40대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동 가능성이 높아진 시대에 직장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 회사에 엉덩이를 붙이고 진득하게 일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경력 포트폴리오를 늘리기 위해서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지. 저성장을 넘는 새로운 성장론인 블루오션전략이 개인에게도 필요한 분야가 바로 이곳이다. 블루오션전략은 경쟁해서 이기기 보다 새로운 시장을 찾으라고 권한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높이고 비용을 낮춰 더 큰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개인들에게 적용하면 이제 개인들은 동료들과의 경쟁보다는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그 목표는 스스로 적어도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경제수명'을 늘리는 데 두면 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배워 자신의 가치를 높이면서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를 갖출 때 '팔리는' 프로페셔널이 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통하는 가치 높은 인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사라지느냐 아니면 살아남느냐의 문제는 없어지고 만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