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과거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측에 대선자금을 전달한 곳으로 알려진 서울 압구정동 H아파트 주변 주차장은 재벌들 사이에서 검은 돈의 전달장소로 인기(?)를 끈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신한국당이 국세청을 동원해 정치자금을 모금했다는 이른바 `세풍' 수사기록에 따르면 15대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97년 9∼11월 이회창 후보의 동생 회성씨는 이 주차장에서 4차례에 걸쳐 삼성 돈 60억원을 건네받았다. 문제의 이 주차장은 3년 뒤 현대그룹에 의해 다시 이용된 사실도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대검 중수부는 `현대비자금' 사건 수사 때 권노갑씨가 2000년 3월 이 주차장에서 자금관리인 김영완(외국체류)씨를 통해 현대측으로부터 현금 200억원을 받았다고 권씨의 공소장에서 밝혔다. 당시 검찰은 현대측이 김영완씨와 논의를 거쳐 비자금 200억원을 서류상자 60여개에 나눠 담아 포장한 뒤 한번에 15∼20상자씩 김씨가 지정한 압구정동 H아파트 주변 주차장에 옮기는 방법으로 돈을 권씨측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비록 대법원에서 뇌물수수 혐의가 무죄 취지로 판결나기는 했지만 현대측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았다며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구속기소할 때에도 검찰은 돈거래 장소로 이 곳을 지목했다. 이들 사건 외에도 거액의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서도 이 장소가 심심찮게 등장한다고 특수수사통 검사들이 전했다. 백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거액의 검은 돈을 거래할 때 이 주차장이 애용된 것은 특수한 지리적 `이점' 때문이라는 게 수사검사들의 전언이다. 88올림픽대로 인근 둑 밑에 위치한 이 주차장은 H아파트 단지와 인접한 외부공간으로 낮에도 인적이 드물고 경비원이 없어 수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눈에 발각될 염려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도로를 따라 차량을 일렬로 주차하기 때문에 돈이 든 상자나 가방을 주고받고 순식간에 장소를 벗어날 수 있는 점도 이곳이 검은돈 거래의 명소로 자리잡은 이유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1997년 삼성의 대선자금이 전달됐을 때 당시 이 주차장 인근 아파트에는 홍석현 주미대사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안기부 X파일과 세풍 수사기록에 홍 대사가 삼성의 대선자금 심부름 장소로 이 곳을 활용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낳게 하는 단서들이 포함돼 있어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홍 대사가 삼성의 대선자금 전달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실제로 이 주차장을 돈거래 장소로 잡았는지는 참여연대가 안기부 X파일 내용을 근거로 고발한 삼성의 대선자금 제공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서 규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