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붓으로 美 대륙을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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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루루~ 자,출발!'
뉴욕 맨해턴 중심가에 위치한 펜(Penn)역. 설치미술가 전수천씨(58·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14일(현지시간) 오후 1시 호루라기를 불자 미국 대륙 횡단열차가 12번 플랫폼을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전씨가 13년에 걸친 구상과 준비작업 끝에 탄생한 '움직이는 선,드로잉 프로젝트'가 8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한 것이다.
'움직이는 …'는 흰색 천으로 뒤덮인 15량의 기차를 타고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5500㎞의 미국 대륙을 횡단하면서 드로잉을 펼치는 이색 프로젝트.미 대륙을 캔버스로,기차를 붓으로 삼아 하얀 선을 그리는 행위다.
특정 장소에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형성할 수 있는 실험적인 작업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전씨는 지금까지 전세계 어떤 작가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새로운 표현 장르로 움직이는 기차를 선택했다"며 "움직이는 매체를 통해 많은 것을 소통할 수 있고 이 자체가 예술작품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가의 이 같은 행위는 동양의 선(禪)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이 기차는 뉴욕을 출발해 워싱턴 시카고 캔자스시티 가든시티 알부쿼키 그랜드캐니언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를 경유한다.
피아니스트 노영심,사진작가 배병우,소설가 신경숙,영화평론가 오동진,건축가 황두진,풍수지리학자 조용헌씨 등이 행사에 동참,달리는 기차 안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주제로 자유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출발에 앞서 열린 오프닝 행사에는 문봉주 주미대사관총영사,우진영 한국문화원장,도영심 관광스포츠대사,화가 김호식 김강용씨 등 5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전씨의 설치 프로젝트를 축하해 줬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던 전씨는 1993년 이 프로젝트를 처음 구상해 2000년에 본격 추진했으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두 차례나 실패했었다.
그는 지난 1989년에 한강에서 행한 '한강에 그려진 드로잉'과 땅에서 이뤄지는 이번 프로젝트에 이어 하늘에 선을 그려보는 작업도 구상 중이다.
전씨는 그러나 문화관광부와 광복 60주년 기념사업 추진단,기업들의 지원 등에서도 기대만큼의 자금이 마련되지 않아 애리조나 사막에서 펼쳐보이려던 '월인천강지곡'을 포기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뉴욕=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