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농민 눈치 보기'로 쌀협상 국회비준안 처리가 계속 지연돼 장기 표류할 조짐이다. 이에 따라 국제적 신인도 추락은 물론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등 향후 통상협상에서도 한국의 입지가 더욱 좁혀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표류하는 쌀 협상 비준안 정부는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결과에 따라 작년 말로 끝난 '쌀 시장 개방 유예기간'(1995~2004년)을 오는 2014년까지 10년간 더 연장하고,그 기간 중 매년 국내 소비량의 4.4~9.6%에 해당하는 외국 쌀을 수입하기로 하는 협상을 미국 중국 등 세계무역기구(WTO) 소속 쌀 수출국가들과 작년 말 마쳤다. 협상안은 국회비준을 받아야 정식 발효된다. 그러나 정치권 분위기만 보면 쌀 협상 비준안이 언제 처리될지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달 중 처리를 추진하다가 농민단체와 민주노동당 등의 반발이 크자 비준안 상정 시기조차 정하지 못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유선호 열린우리당 간사는 "언제 비준안을 상정하고,본회의에서 처리할지 등 기본 스케줄을 전혀 잡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상당수 농촌 출신 의원들은 아예 쌀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일현 열린우리당 쌀협상 비준대책위원장은 "쌀 재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의원들이 사태를 냉정하게 주시하지 않고 표만 의식하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개탄했다. 정치권에서는 10월 재.보선까지 앞두고 있어 쌀 협상 비준안 처리가 계속 늦어져 연말까지 밀릴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연내 비준 안되면 전면 개방해야 쌀 협상 국회 비준이 늦어지면 한국엔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 우선 협상 결과를 이행하는 데 차질이 빚어진다. 한국은 전체 소비량의 4.4%인 22만6000t의 외국 쌀을 올해 안에 의무 수입해야 하는 데,시간이 촉박하다. 외국 쌀 구매엔 통상 3~4개월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국회 비준이 늦어지면 수입 쌀 구매가 졸속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서둘러 구매절차를 밟다 보면 제값보다 비싸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시간이 정 부족하면 올해분 의무수입물량을 못 채울 수도 있다. 그 경우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고 DDA 농업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는 국회 비준이 연내에 처리되지 못할 때다. 쌀 시장 개방 유예를 위한 협상 결과가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하면 재협상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은 내년부터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