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成 旭 <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 북핵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경수로 제공 여부를 둘러싸고 북ㆍ미 양측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각국 대표단이 베이징에서 철수도 하기 전에 "(우리는)미국이 신뢰조성의 기초가 되는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담보제공 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할 것"이라고 언급, 관련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속칭 '창조적 모호성'으로 가득한 공동성명 내용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북ㆍ미 양측의 동상이몽(同床異夢)적 해석은 회담후 차기 후속 일정을 둘러싸고 초반 판세에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선전전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회담 타결 직후 워싱턴 고위층에서 강경파의 입장이 반영된 확실한 검증 요구가 나옴에 따라 북한은 이에 대해 맞불을 놓을 필요를 느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적절한 시점'으로 명기된 경수로 제공 문제를 미국의 가장 최우선 이행과제로 지정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선(先) 핵폐기, 후(後) 경수로 제공 논의'라는 복안을 '선 경수로 제공, 후 핵폐기' 구도로 전환해야만 향후 미국의 이행을 담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미국은 핵의 평화적 이용권을 미리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론이라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경수로 제공에 유보적이다. 이처럼 경수로 문제는 초기 합의를 가동시키는데 일차적인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수로가 합의문 이행을 지연시킬 수 있는 복병이기는 하나 양측의 물밑 협상에 따라 타결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금번 합의는 3년간에 걸친 북핵 협의를 일시에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경수로 문제도 타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향후 경수로는 두 가지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우선 제공 시기의 문제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미국이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국제 의무의 준수시점이 경수로 완공 후인지, 혹은 제공 약속 후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현실적인 대안은 시한을 못박은 경수로 제공 약속과 함께 북한은 NPT체제에 복귀하고 IAEA의 사찰과 검증 일정을 확정함과 동시에 경수로 제공의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시행하면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검증 작업의 속도와 경수로 건설의 시기를 조정하면 북ㆍ미 양측의 불신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존속 여부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KEDO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렸으나 경수로 제공이 약속됨에 따라 기존 방침은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 다만 입장 번복에 부정적인 미국의 방침을 감안, KEDO의 형식을 달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핵발전소 건설 사업으로 이란 등에서 돈벌이에 주력하는 러시아가 신규 경수로 건설을 재빠르게 제안했지만,새로운 사업을 전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KEDO의 소요 예산을 한국이 절반 이상 부담하고 있고 초기 토목공사가 완료된 만큼 기존 신포 경수로를 완공시키는 편이 신속한 대안이다. 이는 북한을 NPT체제로 조속히 복귀시키는 가장 빠른 당근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은 송전 제안과 경수로 공사 재개 중에서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대북송전 발표시 소요 재원으로 경수로 건설자금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만큼 경수로와 송전 모두를 추진하는 것은 입장 번복과 재정부담 과중 등으로 곤란하다. 물론 북한은 합의문에 송전안을 포함시켰고 남북이 당국간 채널을 통해 전력공급 문제를 논의함에 따라 경수로 건설 이외에 남한으로부터 별도로 전력도 지원받겠다는 속내를 갖고 있는 만큼 정부의 명확한 입장 제시가 필요하다. 각국이 11월 5차회담까지 물밑접촉을 통해 풀어야 할 과제다. 어렵게 탄생한 옥동자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각국이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