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농민들의 눈치를 보며 쌀협상 비준안 처리를 계속 지연시키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상당수 농촌 출신 의원들은 현실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쌀 재협상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국회의 무책임성을 보면 선진통상국가는 요원(遙遠)한 꿈으로 비친다. 작년 말 미국 중국 등 세계무역기구(WTO) 소속 쌀 수출국가들과의 협상안은 그 동안의 쌀시장 개방 유예기간(1995~2004)을 오는 2014년까지 10년간 더 연장하는 대신 그 기간 중 매년 국내 소비량의 4.4~9.6%에 해당하는 외국 쌀을 수입키로 한 것이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국제시장의 규범상 언제까지 우리나라만 유예를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어렵사리 타협해 낸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협상이 타결되자 하루라도 빨리 국회가 협상안을 비준하고 앞으로 남은 기간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에 모두의 지혜를 모으자고 주문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농민들의 비상한 자구노력이 요구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협상에 대한 의문과 불신이 제기되는 등 퇴행적으로만 흘러가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농민단체 등이 크게 반발하고 농촌의원들이 이에 가세하면서 집권여당은 비준안 상정 시기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국회가 오히려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꼴이 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사태를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비준안 처리를 계속 지연시키면 국내적으로는 쓸데없는 오해와 소모적인 갈등만 더 키울 뿐이다. 대외적으로는 국가 신인도(信認度)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에서도 불리한 처지에 빠질 위험이 크다. 국회 비준이 무산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란 점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재협상도 우리 정부가 다시 하자고 해서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만약 쌀 협상안이 국회비준을 받지 못하고 해를 넘길 경우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농민들은 물론 국회도 좀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