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와 유가는 허리케인에 달렸다." 세계 금융 중심지인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는 주식 시세판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 남부로 다가오고 있는 허리케인 '리타'의 진로를 쫓는 일이다.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트레이더 누구나 할 것없이 모두 주가 움직임보다 리타의 진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날씨 채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USA투데이는 22일 "요즘 월가에서는 TV나 웹사이트를 통해 허리케인의 진로를 추적하는 일이 기업 내용을 분석하고 그 기업의 주가 움직임을 예상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업무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월가의 풍속도를 이렇게 바꾼 것은 물론 허리케인 '카트리나'다. 카트리나는 자연재해가 유가와 주가 등에 얼마나 큰 변수가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경제적인 변수보다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가 금융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서 이제는 기업실적보다 날씨나 기상상태가 주가의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카트리나 때처럼 이번에도 금융시장과 원유시장에서는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리타가 멕시코만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9일 이후 유가는 급등하고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플로리다주 남부를 지나 멕시코만으로 접근 중인 '리타'는 23일(현지시간) 오후 늦게 멕시코만에 접근,24일 텍사스주나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 인근, 또는 멕시코 북부 지역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돼 또 다시 엄청난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헤지펀드인 클라리온 그룹의 펀드 매니저 모트 코헨은 "날씨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며 "이제는 투자할 주식을 고를 때 기상상태가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날씨가 주가나 기업수익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날씨 관련 파생상품 시장도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허리케인 등의 영향으로 올 들어 8월 말까지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날씨 파생상품 거래량은 50만계약에 달해 지난해 전체 거래량의 4배를 넘어섰다"고 이날 보도했다. 날씨 파생상품은 특정한 기상 조건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투자리스크를 헤지하거나 아예 그런 기상 조건이 발생할 경우를 예상하고 돈을 베팅하는 금융상품이다. 현재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날씨 파생상품은 기온과 관련된 것들이며 강우량 관련 상품도 많이 거래되고 있다. CME는 현재 허리케인과 연계된 파생상품도 개발 중이며 내년에는 이를 상장할 계획이다. 날씨 파생상품의 주 고객은 전기 가스 등을 공급하는 업체를 비롯한 에너지 업체와 농산물생산 유통업체 의류소매업체 여행업 등이다. 이들은 기온이나 강우량에 따라 냉난방 수요,농산물 작황,의류판매,여행객 숫자 등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특정 시점의 수익을 날씨 변화와 상관없이 확정시키기 위해 날씨 파생상품을 사용한다. 현재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 정도가 직·간접적으로 날씨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ME의 날씨 파생상품 담당자인 펠릭스 카라벨로는 "일기예보가 증권사 데일리 리포트에 당연히 포함되고 기상캐스터가 바로 애널리스트가 되는 그런 세상이 곧 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