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막 부임했을 때입니다. 살 집을 구하기 전에 잠시 머물던 호텔에서 나온 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호텔이 폭격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알고 지내던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도 듣고…(침묵)…죄송합니다." 김규식 KOTRA 전 바그다드 무역관장이 200여명의 'KOTRA 맨'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최근 서울 염곡동 KOTRA 본사에서 있었던 월례 조회에서다. 2년간의 이라크 바그다드 근무를 마치고 지난달 귀임한 김 전 관장은 이날 조회에서 근무 소감을 말해 달라는 홍기화 KOTRA 사장의 주문을 받고 위기를 모면했던 순간을 하나 둘 털어놨다. "가라면 가는 게 KOTRA 맨의 사명"이라며 말문을 연 김 전 관장은 무장 강도를 만났던 일,가족들이 위험을 뚫고 자신을 찾아온 일 등을 말하는 대목에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지난해 4월 요르단 암만에 머물던 가족들이 봄 방학을 맞아 바그다드를 방문했던 때라고 회고했다. "가장 치안이 안 좋았던 시기였는데 겁없이 가족들을 불렀습니다.바로 다음 날 똑같은 길로 오던 한국인 목사님 일곱 분이 납치를 당했었죠." 김 전 관장은 이어 "지난해 바그다드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박람회에 방탄 조끼까지 마련해 가면서 참가하려고 했던 한국 기업인들이 현지 테러 위험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면서 "그 무렵이 무역관장으로 근무하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후임자에게 일을 많이 남기고 온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김 전 관장은 "이라크에 평화가 찾아오면,아니 평화가 찾아오지 않더라도 다시 한번 지원해 KOTRA 맨으로서 하려고 했던 일을 하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