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역사상 최악의 허리케인 피해를 당했던 비운의 도시 갤버스턴이 100여년만에 또다시 밀려오는 초대형 허리케인 리타의 공포에 숨을 죽이고 있다. 텍사스주 연안 갤버스턴만에 자리잡은 섬 도시 갤버스턴은 한 때 '남부의 월스트리트'로까지 불리며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곳. 식민지시대 스페인의 루이지애나 총독 베르나르도 갈베스의 이름을 딴 이 도시는 1830년대부터 이민이 시작되고 1840-1870년대엔 유럽이민자들이 몰리는 주요 항구로 자리잡으면서 19세기 미국 남서부의 최대 관문으로 손꼽혔다. 남북전쟁 동안에는 남군의 주요 보급기지 역할을 함으로써 북군의 고든 그레인저 장군은 전쟁 직후 갤버스턴까지 진군해 텍사스주의 연방 복귀와 멕시코만 일대의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언해야 했다. 1839년에 이미 시로 승격돼 '남부 월스트리트'의 영화를 누리던 갤버스턴은 그러나 1900년 9월8일 밀어닥친 4등급 허리케인으로 한순간에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8천-1만2천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4급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뒤 갤버스턴은 점차 쇠락하고, 북서쪽으로 82㎞ 가량 떨어진 휴스턴에 항구가 만들어지면서 이곳이 대체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인구 5만7천여명에 불과한 소도시 갤버스턴은 그러나 휴스턴처럼 융성하지는 못했지만 1백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허리케인의 상흔을 씻고 항만도시로 나름대로의 기반을 구축했다. 관광, 휴양지로도 알려져 있는 갤버스턴에는 텍사스대 의대와 텍사스해양아카데미, 마린생명의학연구소 등 연구 교육기관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1972년 컨테이너 터미널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100여년만에 또다시 밀려오고 있는 초대형 허리케인 리타는 이 도시에 과거의 악몽에 떨고 있다. 100여년전보다도 더욱 강력한 5등급 허리케인 리타가 이 도시를 강타할 것으로 예보되면서 이 도시엔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전주민 강제대피령이 내려졌다. 갤버스턴 시 관리들은 '당장 떠나서 안전할 때까지 대피해 있으라'고 주민들의 대피를 촉구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