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낡은 도시와 쪽빛 바다.


멜리아 코이바 호텔 15층에서 내려다 본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아침 풍경은 그랬다.




1492년 쿠바를 발견한 콜럼버스가 '지상 최대의 아름다운 땅'이라며 칭송했던 곳.미국의 봉쇄정책으로 수십년째 신음해온 사회주의 나라 쿠바는 관광객들에겐 여전히 아름다운 섬나라다.


동양인의 눈엔 여전히 낯선 땅이지만 연간 관광객수가 2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쿠바는 이미 세계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호텔을 나서 짙은 '쿠바사람 냄새'를 맡고 싶다면 아바나와 대서양이 만나는 방파제가 펼쳐진 말레콘 거리를 걸어 보자.40∼50년은 족히 돼 보이긴 해도 고급스런 멋이 깃든 '골동품급' 자동차들이 질주하며 이방인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 곳이기도 하다.



10여km나 길게 뻗은 말레콘 거리의 방파제는 아바나 시민들에겐 휴식과 로맨스의 공간으로 가장 사랑받는 곳.달콤한 눈빛을 주고 받는 연인들,연신 바닷물로 뛰어드는 소년들,기타를 퉁기며 '찬 찬'을 부르는 무명의 악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동양인을 보고는 "치노(중국인)?"라며 밝게 웃는 쿠바인들에게 "꼬레아노(한국인)"라고 답하면 의외라는 듯한 표정도 짓는다.


말레콘을 따라 차로 10분.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올드 아바나'로 접어 든다.


이곳의 심벌인 대성당을 비롯해 수많은 옛 건물들과 크고 작은 광장,공원 등이 자리잡고 있는 이 지역은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대성당 광장에 늘어선 노천 카페에 앉으면 '관타나메라' '아나콘다' 등과 같은 노래에 절로 어깨가 들썩 거린다.




모두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생음악이다.


음악뿐만이 아니다.


올드 아바나 거리엔 원색의 크고 작은 그림들이 전시돼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아직도 쿠바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쉰다는 체 게바라의 초상화는 단연 압권이다.


올드 아바나를 걷다보면 화려한 옷차림에 시거를 문 노인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자 모델료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지만 그냥 지나쳐도 개념치 않는 모습이 정겹다.


관광객이라면 '라 보데기타'와 '엘 플로리디타'에 꼭 들러야 한다.


헤밍웨이가 쿠바에 머무르는 동안 자주 들렀다는 이들 카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칵테일은 '모히토'.3년산 럼주에 설탕 반 스푼,라임과즙,소다수,얼음이 더해지고 끝으로 자극적인 향을 풍기는 민트과의 식물인 예르바부에나를 첨가하면 오묘한 맛을 낸다.


헤밍웨이는 한때 하루에 10잔 이상씩 모히토를 마셨다고 한다.


쿠바인들이 음료수 정도로 여기는 이 칵테일을 맛 보기 위해 라 보데기타의 문앞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취기가 오르고 음악이 연주되면 라 보데기타에선 어느새 흥겨운 춤판이 벌어진다.


사회주의 혁명의 함성이 깃든 '혁명광장'을 끝으로 아바나를 대강이나마 둘러 보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벌써 아바나를 벗어나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양쪽으로 접한 천혜의 해변으로 향한다.


쿠바는 섬 전체가 휴양지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100m 이상을 걸어 들어가도 어른 키를 넘지 않는 완만한 바다와 하얀 모래밭은 서양인들에겐 최고의 휴양지로 꼽힌다.


어느 곳이든 호텔이나 리조트만 건설하면,아니 파라솔 하나만 꽂아도 최고의 휴양지가 될 법하다.


사회주의 쿠바의 유일한 유료 고속도로인 아바나∼바라데로 간 도로를 2시간 남짓 달리면 마탄사스 지역의 '바라데로'에 도착한다.


관광객들의 '최종 목적지'이기도 한 바라데로는 아바나에선 생각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모습의 쿠바를 느끼게 한다.


대서양쪽으로 뻗어 있는 작은 반도 바라데로는 20km에 이르는 해변에 고급 리조트,골프장 등이 들어서 있어 패키지 관광객들이 많다.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1달씩 머물며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바라데로에 접어들면 언덕 위에 자리잡은 3층짜리 하얀 저택이 눈길을 끄는데 1959년 혁명 이전 미국의 듀폰가에서 소유했던 '듀폰하우스'다.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는 이 저택은 6개의 침실을 갖추고 하루밤 숙박료(2인 기준)로 150세우세(쿠바의 태환화폐)를 받는다.


미화로 치면 185달러나 되지만 바로 옆 골프장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어 러시아 부호들이 통째로 빌리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끝없이 펼쳐진 해변 모래밭엔 일광욕을 즐기며 책을 읽는 노인들,비치발리볼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다.


대부분이 유럽과 캐나다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체를 드러내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여성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바라데로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승한 대학생 마이렐리스 레이세카 산체스(20)는 "차를 얻어타기 위해 2시간을 기다렸다"면서 "당신들이 본 바라데로는 쿠바가 아니다"는 말을 했다.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 쿠바인들에겐 천혜의 휴양지들이 아직은 여가를 보낼 만한 공간이 아닌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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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수첩 ]


쿠바는 관광지로서 아직 낯선 나라다.


떠날 마음을 먹기도 쉽지 않다.


국내에선 쿠바 단독 패키지 상품은 아직 없다.


다만 멕시코 칠레 등 중남미 5,6개국을 묶은 18일짜리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가격은 590만원 선.쿠바만 관광하고 싶다면 항공편,화폐,숙박 등 현지 정보를 사전에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미국 비자가 있다면 LA나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멕시코로 들어간 뒤 쿠바행 항공편을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 비자가 없을 경우 토론토를 경유하는 게 좋다.


대한항공은 화·목·일 오후 20시55분에 KE073편을 운항 중이다.


캐나다에선 에어캐나다(화·목·금·일 오전 10시55분) 또는 쿠바항공(금·일)으로 갈아타면 된다.


왕복항공료는 모두 222만원 선.


캐나다에선 쿠바 여행 상품이 다양하게 판매 중이다.


캐나다에서 7박8일짜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가격은 항공료,호텔 숙박료 등을 포함해 1200달러 선이다.


쿠바 현지에선 달러를 사용할 수 없다.


쿠바의 태환화폐인 세우세(CUC)로 환전해야 한다.


호텔에선 100달러를 주면 80CUC 정도 받을 수 있다.


쿠바 정부 정책에 따라 1 대 1이던 달러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달러보다는 유로를 가져가는 게 돈을 크게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다.


국내에서 비자를 받으려면 어메이징 아메리카투어(02-737-0922)를 통하면 된다.


아바나·마탄사스(쿠바)=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