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뿔 잘린 순록(馴鹿)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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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 < 화가 >
몽골 사람들이 초원에서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것이 순록이다.
몽골인들은 순록의 노동력과 젖과 고기와 가죽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순록을 잡아먹지 않는다고 한다.
늙어서 자연사한 순록만을 먹는다 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착하게 살아온 몽골인들에게도 외국인 관광객들의 달콤한 입김이 불어온 지 오래다.
텔레비전에서 본 몽골 순록은 끝없는 초원 위를 달리며 살아가던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잃고,여윈 모습으로 관광객을 업고 사진을 찍히는 관광 수입원의 하나로 변해가고 있었다.
특히 한국 관광객들은 몸에 좋다고 순록의 뿔을 잘라서 먹는다.
뿔이 잘린 순록의 슬픈 눈이 눈에 밟혔다.
그런 식으로라면 머지않아 아름다운 순록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텔레비전 속에서 한 중년의 몽골인이 말한다.
"외국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는 순록이다"라고….순록과,자연과 함께 가는 길만이 오래 사는 길임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관광이라는 지점에서 하나로 통한다.
전쟁의 상흔과 고통의 역사조차도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 관광자원이 되고만다.
아우슈비츠나 킬링필드처럼.
모든 생물체는 자신의 무엇을 팔아서 먹이를 구하며 삶을 영위해가는 운명을 지닌다.
만일 한 인간이 자신의 피를 팔아 살아간다면 그는 머지않아 쓰러지고 말 것이다.
'머릿속에 금이 든 사나이'라는 동화가 생각난다.
좋아라하며 금을 빼서 팔아 흥청망청 놀며 살던 동화 속 주인공이 떠오른다.
관광자원이란 그렇게 피나 금처럼 쓰면 없어지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쓰면 쓸수록 반들반들 윤이 나고,낡을수록 아름다운 그런 것이어야만 한다.
말하자면 먼 미래를 내다보는,바닥이 나지 않는 튼튼한 자원이어야만 한다.
네팔처럼 아름다운 자연도 관광객들에 의해 버려져가고 있는 것을 볼 때도 아쉬움이 앞섰다.
관광객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와 샴푸와 세제들의 사용으로 깊은 산골짜기의 물까지 오염되고 있다.
제주도만 해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그 아름다운 땅에 외지인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홍도 흑산도 보길도 거문도 백도 등 우리가 보살피고 가꾸어야 할 아름다운 섬들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한국은 외국인들이 아직은 그리 선호하는 관광 대상국이 아니다.
어쩌면 언젠가 이 지구 상에 마지막 관광 대상국은 북한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갈 수 없는 어떤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서서히 자라 북한에 관광객의 발길이 늘어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오래 팔 수 있는 풍부한 자원이 과연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서구인들이 서울에 와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말하라면 대부분 비무장지대를 꼽는다.
금지된 곳,아무도 갈 수 없었던 곳에 대한 호기심을 아주 고급의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면 북한의 경제 사정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안다.
하긴 금강산 관광만 해도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닌가?
하지만 생각처럼 사람들은 금강산을 보고 싶어서 안달을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푸껫이나 발리를 더 선호한다.
초등학교 시절의 낯익은 노래 '금강산 찾아가자.일만 이천봉…'은 그저 노래일 뿐이었는지 모른다.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우리의 값싼 동정심을 통일을 염원하는 거대한 기도로 착각해온 건 아닐까?
아니 우리는 지금 현재 먹고 살기에 너무도 급급해서 형제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모두들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정말 우리의 미래는 외국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는 몽골인들의 순록처럼 소중하게 지켜야하는 내 나라 내 땅의 풍경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