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대표하는 인장인 국새(國璽)를 왕조시절에는 '옥새'라 불렀다. 재질이 옥이었기 때문이다. 옥새의 유래를 따지자면 중국의 진시황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봉황새가 깃든 돌에서 캐낸 옥으로 임금의 도장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왕(穢王)이 최초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후 옥새는 중국으로부터 하사를 받아오곤 했는데,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진 것은 조선왕조 때였다. '위화도회군'으로 역성혁명에 성공한 조선왕조가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명나라에 옥새를 내려줄 것을 요청해서다. 당시 옥새의 꼭지에 새겨진 동물은 거북이였다. 거북이는 황제가 변방의 제후에게 내려주던 도장에 새겨진 영물로 '복종'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 거북이는 정부수립 이후 만들어진 국새에도 그대로 채택돼 1999년 2월까지 사용됐다. 지금의 '봉황국새'는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상징물을 용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봉황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말이 많았던 국새가 금이 가는 바람에 또 한번 도마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상징물에 대한 논쟁이 재연될 조짐마저 없지 않은 것이다. 전통적으로 용은 중국이나 인도,한국 등지에서 황제를 상징하고 있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면서 만든 국새에 용을 새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용이 뱀을 닮은 데다 요한계시록의 '인류 최후의 날'에 나타나는 괴물 또한 용과 비슷하다 해서 사탄으로 여기고 있어서다. 따지고 보면 봉황 역시 동양에서 숭배하는 영물 중의 하나로 성군(聖君)의 상징이었다. 서양에서도 봉황은 '불사조'라는 대접을 받고 있는데,로마제국 황제의 휘장이 봉황이었다. 국새의 상징물이 용이든 봉황이든 그리 큰 문제일까 싶다. 중요한 것은 국새만큼이나 국가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