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 민 < 본사 주필 > 아마도 세금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에 그냥 뜯긴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 조세부과는 정부수입 증가보다 소비자의 후생은 물론 기업 등 공급자의 후생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더 크다는 이른바 '경제적 순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이론적 검증결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자.과연 정부가 빼앗아 가서 당국자들이 '꿀꺽'해 버리고 마는 것인가. 그건 분명 아니다. 나라를 지키고,산업발전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취약계층의 생활안정을 돕는 등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용한다. 그렇다면 세금을 장려하고 최소한 거부감은 갖지 말아야 할 일이다. 맞는 말이다. 다만 이는 세금을 꼭 필요한 만큼 공평한 방법으로 거둬 들이고,또 낭비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쓴다는 전제가 충족될 때 성립하는 얘기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심의할 내년 세제개편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가 소주와 LNG 등의 세율인상안을 내놓자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극력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불황으로 살림살이가 어려운데 서민주(庶民酒)의 세금을 꼭 올려야 하겠느냐는 이유에서다. 물론 세금이라면 거부감부터 갖고 있는 일반 국민들의 여론도 이에 동조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진작부터 감세정책을 주장해온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세율인상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이유인즉 올해만 해도 4조6000억원의 세수결함이 생기고,내년에는 더 많은 세수부족이 예상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재정은 매년 적자에 시달리면서 그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세금을 더 거둬선 안된다고 정부를 닦달할 일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원론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정부 씀씀이를 대폭 줄이거나,아니면 국민들의 동의를 받아 세금을 더 거두는 길 밖에 달리 대안이 없다. 그러자면 불공평한 조세징수는 없는지,탈루세금은 없는지부터 챙겨보아야 한다. 또 지출에 낭비는 없는지도 점검해보아야 한다. 이런 불합리를 먼저 시정하는 게 올바른 순서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정부입장에서 보면 국민들이 요구하는 복지수준이나 사업규모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고 마냥 빚을 내서 쓸 수도 없는 처지 아닌가. 한마디로 국민들의 욕구와 그에 걸맞은 세금부담 용의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엄청난 괴리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를 부추기는 것이 바로 정치권이란 사실이다. 선거와 표를 의식해 선심성 깎기경쟁을 벌여온 탓이다. 평소 때는 모른 척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감세를 들고 나온다. 온갖 명목의 조세감면제도가 난립하고 있는 것도 입법과정에서 이뤄진 정치적 타협의 산물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세제는 누더기가 되고,유리알 지갑 봉급생활자들만 '숨김없이 털리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내년 세제개편안을 놓고 갈등을 빚고,야당은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이를 관전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정치상황이라면 이는 뭔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떠나 정부불신 정책불신만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사회일각에서 소주세율 인상안이 정부와 여당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짧게는 10월 재보선,길게는 내년 지자체 선거 등을 앞두고 선심효과 극대화를 위해 정부가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여당은 깎아주기 생색을 내는 각본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정치쇼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