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론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삼성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절대로 규제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김범철·상경대 4학년) "무슨 소리! 삼성은 허다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규제해야 마땅하다."(최병진·경영학과 4학년) 대학생들의 토론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었다. 지난 22일 연세대 상경관 B120호실. 파노라마 식으로 펼쳐진 대강의실이 후끈 달아올랐다. 주제가 주제인 탓도 있다. 오늘의 토론 주제는 소위 '삼성공화국론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시사이슈 정면 돌파다. "대우가 무너질 때를 생각해 보자.기업 하나가 무너지자 그룹 전체가 무너졌다. 한 기업이 경영을 잘못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면 규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삼성그룹도 예외일 수 없다."(양병덕·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삼성 그룹을 해체하라는 말인가. 삼성이 순환출자를 하게된 것은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경영권이 위협받는 상황을 가정해보자.상품 개발에 투자할 자금과 노력을 경영권 방어에만 쏟게된다. 이것이야 말로 국가 경제의 위험이고 한국 국민의 손실 아닌가."(성기홍·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학생들은 지금 경영학과 전공과목인 '기업 경영환경 이해와 경제뉴스 읽기' 토론 시간을 진행하고 있다. 토론자로 선정된 학생들은 삼성을 별도의 법을 동원해서라도 규제해야 한다는 측과 규제는 '절대 불가'라는 양측으로 나뉘어져 4명씩 논리 대결을 펼쳤다.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바짝 귀를 세우고 있다.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부동산 정책 토론회에 나가야 하는 학생들도 있고 11월에 열리는 성장 분배 토론에 나서야 하는 학생들도 이날 토론에서 한수 배운다는 자세다. 강의실이 열기로 넘치는 것이 비단 학생 수가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토론자들이 서로 마이크를 잡으려 정신이 없을 정도니 열기가 더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토론과 기자들의 강의가 결합된 이 강좌는 연세대학이 개설한 경영학 전공과목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과목.이날은 시사평론가 정관용씨,한국경제신문 산업부 조일훈 기자 등 2명의 외부 강사가 강의를 이끌었고 토론 총평을 위해 지도교수인 김지홍 교수와 정규재 한경 경제교육연구소장도 참여했다. 조일훈 기자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삼성 그룹에 대한 제반정보를 담은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왔는데 선행학습이 잘 돼 있는 것 같아 대부분 생략했다"며 "사실과 다른 주장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훌륭한 토론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지홍 교수는 이건희 회장,이재용 상무 등을 직접 언급할 때 직함을 뺀다거나 논제와 관련이 적은 주제를 길게 말하는 등 학생들이 벌였던 토론에서 빚어진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또 '삼성 공화국론' 같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폭넓게 다양한 자료를 연구해줄 것을 당부했다. 토론을 지켜본 학생들도 새로운 스타일인 토론식 강의에 크게 만족한다는 반응.경영학과 4학년 문재원 학생은 "양측의 의견을 들어보니 혼자서 생각할 때보다 훨씬 정리가 잘된다"며 "이런 수업이 예전부터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길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혼자 경제지를 읽으면 문맥 파악도 벅차지만 이제는 기사의 맥락과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고, 특히 취직을 앞둔 4학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경영학과 4학년생인 김우진 학생도 "수업 내용이 한 가지 방향으로 굳어져 있지 않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관심이 저절로 커진다"며 "이런 수업을 열어준 학교와 한경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송형석.유승호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