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성장 동력을 바꾸고 있다. 제조업이 성장에 한계를 드러내자 카지노와 관광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생명공학 부문을 주축으로 한 연구개발(R&D) 허브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우고 있다. 싱가포르는 천연자원 부재와 노동력 부족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그동안 전자부품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체 유치와 물류 및 금융산업의 허브라는 경쟁력을 통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물류 중심이라는 기능마저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에 급속히 넘어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인 리콴유의 아들 리셴룽 총리는 이 같은 상황을 맞아 부친이 건국 이후 40년간 금지했던 카지노를 전격적으로 허용하는 한편 생명공학 허브 구축이란 구상을 통해 국가 개조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싱가포르는 저비용 국가와 기술 선진국이라는 가위의 두 날 사이에 끼어 있는 처지"라며 "어느쪽으로든 가위 날이 닫히기 전에 죽지 않으려면 뛰어오르는 수밖에 없다"고 혁신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카지노는 '기업가 정신'의 발로 블룸버그통신은 싱가포르 정부가 곧 MGM미라지,라스베이거스샌즈 등 세계적인 카지노 운영업체 12개에 공식 투자유치 제안서를 보낸 후 이 중 2개사를 선정해 카지노를 짓게 할 것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총 투자액은 50억달러 규모가 될 전망이다. 리셴룽 총리는 지난 8월 취임 1주년 및 건국 40주년 기념사에서 향후 싱가포르 경제개발 원칙으로 기업가정신 등 혁신과 R&D 등 두 가지를 거론했다. 카지노는 혁신을 상징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에 대해 그는 "미국인들은 사막에 라스베이거스를 만들어 관광객을 한 해 4000만명씩 불러모으고 있다"며 "인간의 상상력과 혁신 정신에 탄복했다"고 언급했다. 싱가포르는 카지노를 마카오에 필적하는 관광 명소로 만들어 10년 안에 외국인 관광객을 지금의 두 배인 연간 1700만명씩 불러들여 관광수입을 세 배 많은 180억싱가포르달러(11조원)로 늘릴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이를 위해 카지노와 마찬가지로 40년간 불법이던 카바레 설립도 허용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과거에는 적발되는 즉시 태형감이었던 매춘까지 방조하고 있다. ◆생명공학 R&D허브 목표 생명공학 R&D는 또 다른 성장 축이다. 싱가포르는 향후 5년간 생명공학 발전 기금으로 70억달러를 투입키로 하고 그 일환으로 국제 R&D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 단지에는 나노기술 연구소와 게놈 연구소 등 테마별 7가지 R&D센터가 배치됐다. 싱가포르가 생명공학 R&D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는 높은 비용과 노동력 부족으로 제조업체 유치에 한계가 온 것과는 달리 이 분야는 자원이 크게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과학자와 기업에 이곳에서 자유롭게 연구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대신 이곳에서 개발된 기술을 사업화할 때 참여해 이윤을 챙길 계획이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최근 복제양 돌리를 만든 영국인 과학자 앨런 콜맨과 소변으로 활성화시키는 배터리를 개발한 한국인 과학자도 이곳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싱가포르의 생명공학분야 생산액은 지난해 158억달러로 전체 산업 생산의 8.3%에 이르고 있다. ◆동력의 원천은 위기감 싱가포르는 최근 중국의 부상 등으로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제조업의 명맥을 그나마 유지시켜줬던 반도체 회사 내셔널세미컨덕터와 디스크드라이버 제조사 맥스터가 고비용을 이유로 최근 공장을 해외로 옮겼다. 대기업 머스크시랜드와 에버그린머린이 말레이시아 탄후앙펠레파스 항구로 수출 기지를 바꿔 물류 허브로서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