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부활] (上) 판자촌→상가→뒷골목서 시민 휴식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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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뒷골목'에서 내달 1일 서울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는 청계천(淸溪川).말 그대로 깨끗한 물이 흐르며 도심 속 새로운 휴식·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청계천은 서울은 물론 우리나라 개발연대의 빛과 그림자,서민들의 애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서울)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백성들의 생활하천 역할을 했던 청계천은 영조시대 대규모 준천(하천 바닥의 토사를 파내는 것)과 함께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생활하수로 인해 물은 갈수록 오염됐고 다리 밑은 거지들의 은신처로 변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 중심의 대규모 판자촌이 형성되면서 청계천 오염은 극에 달했다.
1960년대 들어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청계천의 모습은 한국 경제발전과 똑같은 궤적을 그리게 된다.
판자촌과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천을 덮어버리는 복개사업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58년부터이다.
이후 1977년까지 광교에서 마장동까지 전 구간이 복개됐다.
그 사이 1971년부터 복개도로 위로 고가도로가 세워졌다.
1980년대 들어 청계천은 한국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광교∼장통교 도심구간엔 고층빌딩이 들어섰고 복개도로변을 따라 세운상가와 같은 현대식 상가를 비롯 공구상가 재래시장 의류타운 문구·완구타운 등이 잇따라 자리잡았다.
특히 이 일대 의류타운은 한국 수출을 이끈 선봉장이기도 했다.
당시'청계천에 가면 M16소총도 만든다'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였다.
청계천은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도심'뒷골목'으로 전락한다.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에서 내뿜는 먼지와 배기가스로 환경은 나빠졌고 주변 아파트와 상가건물,고가도로 구조물 등이 부식돼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우여곡절의 역사를 담고 있는 청계천이 2년3개월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새 얼굴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