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석 훈 < 성신여대 교수·경제학 > 정부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 그리고 2005~2009년 중기재정계획안 등을 확정했다. 먼저 내년도에 정부가 쓸 돈은 올해보다 6.5% 늘어난 221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를 위해 국민들이 내야 하는 세금은 국세 기준으로 1인당 280만원이며 지방세까지 포함하면 356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인당 세금은 올해 사상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내년에는 이보다도 24만원 정도가 더 늘어나게 된다. 국민들이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내더라도 정부가 쓰는 돈이 많아서 관리대상수지는 11조7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며,일반회계에서만 9조원의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릴 예정이다. 정부의 예산안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제성장률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불변가격으로는 5.0%, 경상가격으로는 7.5%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의 중기재정계획도 2009년까지 약 5%의 실질경제성장률에 근거해 수립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상치는 매우 낙관적인 예상치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은행은 향후 5년간 평균 실질경제성장률이 4.1%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더욱이 인구구조의 고령화에 대응해 적절한 인적자본 축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3.0%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낙관적인 경제전망에 근거해도 관리대상수지는 향후 10조원 내외의 적자가 계속된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 적자규모는 매년 확대될 것이며, 해마다 국채를 추가적으로 더 발행하는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적자정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재정적자에 대한 태도변화도 주목된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이 내년에는 31.9%로 올라가 사상 최대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참여정부 이전의 정부는 미래의 재정위험요인과 대외신인도 등을 고려해 균형예산을 편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같은 정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다. 지금 정부는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이 OECD 국가의 평균치 76.4%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비율에 다소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OECD 국가와 달리 우리는 경제선진국이 아니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이고 또한 잠재적인 통일에 대비해야 하는 처지다. 재정과 국가채무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나약해지는 순간 재정 건전성은 쉽게 무너져 버리는 모래성이 되기 쉽다. 한편 정부는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양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데에 예산배분의 우선순위를 두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반적인 예산지출내역을 보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출보다는 나눠먹기 식의 복지예산 확대에 주력한 모습이다. 사회보장 예산이 13.7%나 증가한 반면,경제개발 예산은 0.6% 늘어난 데 불과하다. 정부는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늘렸다고 강조하지만, 동 항목의 증가액은 3288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사회복지예산은 1조8244억원이 증가했다. 일반행정에 대한 지출도 26.8%나 증가했다. 또 일부 예산지출은 현재와 같은 경제상황에서 반드시 시급하게 필요한 것인가 의심스러운 항목들도 있다. 일반회계에서만도 금년도에는 없던 예산으로 내년도에 신규로 편성되는 사업은 청소년위원회 204억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78억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151억원이 있다. 이외에도 통일부의 예산이 27.3%나 증가했고,국방부도 9.8%가 증가했다. 정부의 지출내역을 보면 과연 정부가 쓰는 돈이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돈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일을 해서 번 돈이라면 어떻게 바뀔까를 항상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