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면서 좀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버릴 줄도 알고, 잃는 것이 있다 해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추구하고 싶었다." 늘 웃음을 머금고 있고 남에게 웃음을 줄 준비가 돼 있는 줄로만 알았다. 또 '모범'적인 삶을 추구하며 주변의 시선을 상당히 의식한다고 생각했다. 연기에서도 자연인으로서도. 그러나 그가 변했다. 꽉 찬 서른살이 되서일까. 배우 김정은이 29일 개봉하는 '사랑니'(감독 정지우, 제작 시네마서비스)로 연기 인생에 획을 그었다. 그는 불과 몇년전만 해도 시도하지 않았을 연기에 도전했고, 성심을 다해 스크린을 누볐다. 그 때문에 관객에 따라서는 그의 모습에 혼란을 느낄 수도 있을테지만 연기를 한 본인은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변화된 그의 모습에 일부 실망을 느낄지라도 그것은 이제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적인 여유와 함께 어떤 용기가 생긴 것. '성숙'이다. 드라마 '루루공주'의 막바지 촬영과 겹쳐 나흘째 잠을 거의 못잤다는 그와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앉았다. 그러나 '사랑니'에 대한 자부심 덕분에 그의 얼굴에서는 행복이 묻어났다. ▲서른 김정은, 새로운 세계에 눈 뜨다 17살 고등학생과 사랑을 나누는 학원 강사의, 사회 통념상으로는 돌 맞을 연기를 펼치면서 뭐가 그리 행복했을까. 더구나 주인공에게는 동거남도 있다. "사실 시나리오를 두번째 읽을 때만 해도 '이게 뭐야?' 싶었다. 그런데 세번째 읽으니까 '아, 내가 되게 천박하게 시나리오를 읽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그냥 사랑에 빠진 여자의 이야기였다. 그 여자의 기분, 치닫는 감정을 따라가다보니 영화가 좀 특이해보이는 것이지 한 여자의 사랑에 대한 담화인 것이다." 여성의 섬세한 심리에 접근한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에 앞서 변화에 대한 욕구가 꿈틀꿈틀 솟아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서른 살이다. 스물 여섯, 일곱, 여덟살 때의 내 모습은 잘 웃고 코믹하고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내게는 여러 면이 있다. 서른이 되면서 좀 더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고 일상을 연기하고 싶었다. '사랑니'를 통해 자연인으로 돌아간 것 같아 굉장히 행복했다." 그렇다고 180도 뒤집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원이 진급하며 조금씩 변화하듯 나도 같지만 약간 다른, 또 다르지만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시나리오 상의 조인영은 김정은을 만나며 많이 절충됐다. 시나리오에서는 조인영이 영화보다 훨씬 불친절하고 무심한 여자로 표현됐지만 김정은을 만나면서 꽤 살가운 여자가 됐다. ▲자기 복제는 그만, 이제는 열린 눈으로 "예전에는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연기를 하며 행복해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반복되는 자기복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변화에 대한 욕구와 지금껏 쌓아놓은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고민이 교차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코미디를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의미한 반복은 이제 그만이라는 것. 작품을 선택할 때도 보다 신중을 기하고 진심으로 마음이 동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사랑니'를 찍기 전부터 벌써 서른이됐음을 부쩍 의식하며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행복하다. 동시에 약간 시니컬하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처럼."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니 여유로울 수밖에. 사랑도 마찬가지다. "조인영처럼 잃는 것이 있다 해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받아들일 것 같다. 힘든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모범생처럼 연애도 자유롭게 못해온 그가 과연 이번에는 그 틀을 깰 수 있을지. 그는 '사랑니'의 개봉 무대인사가 끝나면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루루공주' 파동과 삼심대에 진입한 '혼란'을 잘 극복하고 건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