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때문에 주변 환경이 오염된다는 말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경기도 군포에 있는 삼성에버랜드 안양베네스트 골프장 부설 잔디·환경연구소의 선임연구원 태현숙 박사(여·35).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여성 잔디박사인 그는 친환경적인 골프장 관리 방법을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골프장 관리에 막대한 농약이 필요하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농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로 골프장 잔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현재까지 태 박사가 이루어낸 가장 큰 성과물은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개발해낸 '골프코스 품질 평가시스템'.


현재 안양베네스트 골프장을 비롯해 전국 12개 골프장에 도입돼 시행 중인 이 시스템은 잔디의 발육 상태와 밀도는 물론, 잡초가 자란 정도까지 측정해 골프코스의 점수를 매긴다.


주기적으로 잔디의 상태를 점검하기 때문에 병충해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병충해가 발생하더라도 조기에 발견해 쉽게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태 박사는 그런 거창한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귀띔했다. 농약을 주는 시기를 잘 맞추는 것만으로도 환경에 끼치는 위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


"잔디의 생태적 특성과 기상 조건을 잘 살펴보면 '올해는 5월말'하는 식으로 해마다 비료나 농약을 주기에 적절한 시기가 있습니다.아무리 무서운 병이나 잡초라도 그것이 주로 발생하는 시기에 맞춰 약을 주면 살포량은 최소화하면서 효과는 극대화시킬 수 있죠."


그런데도 아직 대부분의 골프장 관리자들은 잔디가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시기를 가리지 않고 농약을 치고 있다며 태 박사는 안타까워했다. 게다가 농약을 뿌린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다했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잔디가 건강한데도 또 농약을 살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태 박사가 제안하는 방법을 따르기만 해도 농약 사용량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는 셈.


태 박사는 "농약을 적게 주면 비용, 시간, 인력을 동시에 아낄 수 있어 친환경적인 잔디 관리는 결국 경제적인 잔디 관리"라고 덧붙였다.


이미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이 근무 중인 골프장을 '저농약'으로 관리하고 있는 태 박사는 이제 ‘무농약 관리’로 나아가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미생물이나 천연 물질을 이용해 병충해와 잡초를 방제하는 것이 바로 그것.


"기존의 제초제는 잔디에도 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제초제 대신 겐토모나스 캠퍼스트리스포아란 미생물을 활용하면 잡초만 죽이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태 박사가 열정을 불태우고 있지만 국내에서 잔디 연구는 아직 박사 수가 10명을 넘지 않는 미개척 분야다.


태 박사 또한 10년 전 후배의 권유로 우연히 잔디연구소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이제 잔디 연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는 그는 "이 분야의 선구자로서 후배들을 위해 최대한 많은 연구 결과들을 남겨놓겠다"고 다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