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된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을 계기로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5% 넘게 갖고 있을 경우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정부안)하거나 매각(박영선 의원안)토록 하는 것이 골자인 금산법 개정 논란은 대통령의 발언으로 박 의원안 쪽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금산법 개정이 삼성에 문제가 되는 것은 삼성카드가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을 25.64%, 삼성생명이 그룹의 주력회사인 삼성전자의 지분을 7.23%씩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산법 개정으로 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 5% 이상 초과분을 매각해야 할 경우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은 각각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지분중 초과분을 팔아야 한다. 이 경우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순환고리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삼성의 지배구조 자체를 크게 흔들 정도는 아닌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분 처분 가능하나 삼성측은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처분도 쉽지 않은 데다 삼성전자의 경영권 방어라는 중요한 사안이 걸려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선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3.72%,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25.1%,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 등 이 회장의 세 딸이 각각 8.37%, 삼성카드 25.64%를 소유하는 등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93.92%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중 5%를 초과하는 20% 가량을 팔아도 삼성측은 80%를 넘는 지분을 유지하게 된다. 삼성전자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삼성전자는 삼성생명이 7.2%, 이건희 회장이 1.9%, 삼성물산이 4%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13.92%에 불과해 삼성생명이 5%를 초과한 2.2% 가량을 팔면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삼성측은 우려하고 있다. 물론 2% 남짓한 지분이 왔다갔다 한다고 해서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에 변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삼성측은 삼성전자가 그룹의 주력 회사인 만큼 아주 민감하다. 삼성이 현재 삼성전자의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삼성생명의 초과분인 2.2% 가량을 다른 계열사에서 매입해야 한다. 이에 필요한 자금은 약 2조원 가량으로, 출자총액 규제 등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이를 인수할 수 있는 계열사가 없다는 것이 삼성측 설명이다. 이에따라 금산법 개정으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본격화될 경우 삼성전자의 경영권 문제가 핵심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역시 삼성카드가 지분을 매각한다고 할 경우 과연 매입에 나설 곳이 있는지, 삼성의 지주회사 격인 프리미엄을 갖고 있는 비상장사인 에버랜드의 지분 가치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주회사 체제도 거의 불가능 일각에서는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 지주회사 체제로의 개편 등도 거론하지만 이 역시 삼성전자 때문에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로 가려면 지주회사가 삼성전자의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하는데, 시가총액이 90조원 가량에 달하는 삼성전자를 자회사로 두기 위해서는 약 30조원 가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의 경영권 문제를 아예 무시하고 지배구조 개편 문제를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하기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삼성전자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증시는 물론 경제 전체에 혼란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이에따라 금산법 개정 문제도 결국 삼성측에 삼성전자의 경영권 방어 문제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면서 금융 계열사의 지분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해법이 찾아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는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다. 삼성 관계자는 "고민은 하겠지만 지금 상태에서 뚜렷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준 기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