兪 炳 三 < 연세대 교수·경제학 > 세계은행이 최근 낸 자료에 의하면 2003년도 우리의 국민소득(GNI)은 세계 11위 수준이다. 이런 소식이 우리에게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순위가 시사하듯 우리 경제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정도일 뿐이다. 불과 반세기 만에 최저수준에서 이러한 단계에 올랐으니 자랑스러운 사실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자부할 수도 있을 듯한 순위이다. 해외에서는 한결같이 한국 경제를 부러워하는데 유독 우리만 어둡게 보는 듯하다는 대통령의 언급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부자일까. 외부에서는 뭐라고 하든 우리 형편을 돌아보면 선뜻 그렇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개인 지표로 보면 우리의 1인당 GNI는 50위에 불과하다. 그리고 역사왜곡이나 국경분쟁을 빚고 있는 주변국과의 국력을 비교할 때도 일본은 세계 2위이고 중국은 7위인데 우리는 11위라는 것은 좋아할 수만은 없는 등수이다. 더구나 장래의 통일에 대비해 큰 몫을 저축하고 있어야 할 처지임을 생각하면 그나마도 우리는 더 겸손하게 생각해야 옳다. 좀 더 넓게 OECD 국가들을 보아도 이런 사정을 지닌 나라는 우리뿐이다. 그러니 다 같은 회원국이라고 그들과 단순 비교를 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성장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참여정부가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 이런 관점에서 우려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경제에 기여도가 높은 그룹을 '기득권층'이라 하여 일종의 이기적인 폐쇄집단으로 분류하고 배척하는 것도 걱정스런 일이다. 교육에서도 평등주의를 억지로 강요함으로써 성장 동력의 근간인 인적자원 배양이 순조롭지 않다. 지난 27일 정부가 확정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복지 부문의 증가율은 10%가 넘는다. 전체 예산 증가율 6.5%를 훨씬 넘는 값이다. 복지정책은 도덕적으로 옳고 정의에 맞다. 사회통합을 위해 필요한 것임에도 틀림없다. 그러나 경제가 도덕과 정의만으로 꾸려지는 것은 아니다. 나누어주는 복지는 기획도,실행도 일반적으로 손쉬운 일이다. 국민들에게 인기도 있다. 어려운 것은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경제성장이다. 경제를 활성화시켜 빈곤층을 줄이는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로 더 까다롭다. 복지정책이 지니는 정당성에도 불구,많은 이들이 참여정부에 불만을 갖는 이유는 경제의 활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으면서 복지예산을 급속히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정상이라면 더 확실한 지지를 받을 정책임에도 정책의 본말이 전도된 때문이다. 불경기로 세수가 부족하다보니 올해와 내년에 각각 9조원대의 국채를 발행해 부족분을 메울 계획이다. 그리 되면 국가부채는 내년 말 28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래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30% 수준일 것이고 이는 OECD 평균수준 70%에 훨씬 미달한다는 게 정부의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부적절한 비교의 한 예라고 여겨지는 설명이다. 국가채무의 규모도 그렇지만 그 증가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 걱정해야 마땅한 측면일 것이다. 내년도 예산에는 눈에 띄게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R&D 예산이 대폭 인상돼 금년보다 15% 높게 책정돼 있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으로 평가되는 대목으로 경제주체들이 낙관적인 장기전망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올해보다도 적은 수준이 책정됐기에 가시적인 효과가 가까운 장래에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뽑아준 정권이 나라를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국민 모두의 희망이다. 일부러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정권도 없다. 성장과 거리가 있는 참여정부의 정책기조가 변화하는 모습을 그래서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