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병 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경제올인 론은 선동정치의 표본"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정부의 경제우선이 물 건너 갔다. 현재를 경제위기라고 보는 재야의 인식도 부정했다. 증시를 시장경제의 꽃이요,맥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요즘 여의도는 때아닌 꽃이 활짝 피었고 기운차게 맥박이 뛰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8ㆍ31 종합대책의 고강도 투약 탓에 부동산 가격상승세도 한결 풀이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위기가 웬말인가? 문제의 뿌리는 돈에 있다. 심화되는 세계경제의 불균형 때문에 미국 달러화가 풍성하게 풀렸다. 세계 곳곳의 부동산값이 오르고 석유 등 원자재가격이 오른 것은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와 연방준비제도의 저금리 정책이 부린 조화의 일면이다. 국내 부동산시장과 증시의 상황은 이 같은 지구촌 맞추기 그림의 한 조각일 따름이다. 넘쳐나는 돈이 오갈 데를 찾아 부동산 시장이나 증시로 우왕좌왕하며 빚어내는 현상이다. 실물경제와 동떨어진 춤추는 돈의 군무(群舞)가 여의도에서 벌어져 주가를 치솟게 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경제지표가 혼선을 빚고 있다. 통계청은 "경기회복"이라 하고 한국은행은 "경기위축"이라고 한다. 통계기법 차이 때문이니,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다고 시비할 문제가 아니다. 일반인의 체감경기와 어긋난다고 언론에서는 지적하는데,이는 거의 항시 그러하다. 진짜 경기는 "별로올시다"가 정답이다. 한국경제의 문제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정부도 민간도 무사안일ㆍ속수무책이라는데 있다. 넘치는 돈이 부동산으로,증시로 요동치는데 한은은 요지부동이다. 미국 연준은 오랜 저금리정책의 부작용을 알고 인상쪽으로 돌아섰고 앞으로도 지속할 기세이나,한은은 0.5%포인트까지 벌어진 역금리를 방치하고 있다. 남대문에서 뜻이 있어도 과천에서 꺾인다고 탓한다. 그러다 보니 연준이 시장금리를 선도하는 미국과 달리,국내에선 시장금리가 한은을 무시하고 앞장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수출동향을 해외 경기에 의존한다고 보면 내수가 경기를 좌우한다. 양극화된 소비는 저소득층에서 실업ㆍ쥐꼬리 소득 때문에,중ㆍ고소득층에서 이자소득 축소,노후대책 걱정,과소비 비난,세금걱정 때문에 부진하다. 내수의 관건인 설비투자는 깊은 늪에 빠져 있다. 재무구조가 "지나치리만치" 건전한 대기업 등은 강성노조,각종 규제와 기업때리기 국민정서 때문에 국내투자를 꺼린다. 16기가비트 낸드플래시 메모리 등 세계적 첨단상품을 개발해도 칭찬은커녕,국회는 죄인 부르듯 증인소환장을 남발한다. 기업인의 국회증언 자체보다도 투망식 소환이 문제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도 무대책으로 일관하며 할 일 없는 정부가 씀씀이는 헤프다. 지역균형발전,사회복지 등 명분으로 펑펑 쓰는 세출을 세입이 따라가기 어렵다. 이러다 보니 관리대상 재정수지가 2008년 균형에 근접한다던 2004년 계획은 크게 어긋나게 돼있다. 세수부족을 메우자니 세무당국의 갈퀴바람이 거셀 수밖에 없고,납세자는 그 위세에 질린다. 일부 지역에서 조세저항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북한 전력공급 등 "퍼주기"가 실행에 옮겨질 경우,조세저항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한국경제의 문제의 뿌리는 생산하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다는 데 있다. 얼마전 세계경제포럼(WEF)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한국은 기업이 강하나 국가는 약해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3년 연속 WEF 성장경쟁력 순위 1위를 차지한 핀란드는 90년대 초 20%대 고실업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결과다. 자연자원이 부족한 작은 나라의 선택은 교육투자였고,경제가 잘 돌아가는 지금에도 미래를 걱정한다고 핀란드 국민들은 말한다. 미래의 경제를 걱정하지 않는 정치꾼들이 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다. 이것이 문제의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