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5:31
수정2006.04.03 05:32
봉변(逢變)이란 말이 있다.
뜻밖에 화를 입거나 남에게 욕을 당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한자를 풀어보면 그 어원이 재미있다.
만날 봉(逢),변할 변(變).살아가면서 변화를 만난다는 것,다시 말해 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옛날부터 그런 의미로 쓰였을까 싶다.
물론 변화라는 게 모두 힘든 것은 아닐 것이다.
주역(周易)을 현대에 맞게 풀이한 한 동양철학자는 '봉변'을 이렇게 해석한다.
버스가 좌ㆍ우로 회전(변화)할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봉변을 자꾸 당하면 고통스러운데 그것은 버스의 흔들림에 잘못 대처한 결과인 멀미와 같다는 설명이다.
이는 반대로 말해 버스의 흔들림에 잘 대처하면 멀미없이 예정된 장소까지 무사히 갈 수 있다는 얘기와 같다.
실제로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은 좀처럼 멀미를 하지 않는다.
길이 어느 방향으로 굽어있는 지를 볼 수 있고, 그래서 좌회전 때는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면서 몸도 왼쪽으로 기울여 몸이 오른쪽으로 쏠리는 것을 방지한다.
우회전 때도 마찬가지다.
변화의 방향을 미리 알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면 봉변을 당하지 않는 셈이다.
과거 정부에서 각종 '개혁'이 쏟아지더니 이제는 무수한 '혁신'안들이 터져나온다.
개혁과 혁신의 차이가 뭔지 알 수 없지만 '혁신'은 분명 참여정부의 핵심 코드가 되어있다.
어제 정부혁신 우수사례 발표대회에 참석한 이해찬 총리는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시대에서 이제는 자신과 환경을 적극적으로 혁신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혁자생존(革者生存)'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 총리의 말처럼 날로 격화되는 경쟁시장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혁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집권 초부터 '혁신'을 강조해온 여당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신통치 않은 것을 보면 국민들은 지금 참여정부의 혁신을 또 하나의 봉변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실제 무엇을 위한 혁신인지 헷갈리게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연두회견을 경제로만 일관하면서 '경제올인'을 다짐했던 대통령이 어느날 갑자기 '경제올인론은 선동정치의 표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들로선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정권 내부에서도 한편에선 '국민의 70%가 검은 학이라고 한다면 그게 검은 학이냐'며 국민들이 항상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선 삼성그룹의 행태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헌법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시중에 퍼진지 오래 됐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꼭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경제전쟁의 시대에 혁신의 종착역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선진경제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미래지향적 목표라야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고,또 그를 위한 어떤 변화라도 참아낼 수 있다.
물론 혁신의 수단은 법과 원칙이어야 한다.
'국민정서'라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의 추상적 개념이 혁신 여부를 가르는 판단기준이 되어선 곤란하다.
혁신의 방향과 방법론이 분명하고,예측 가능해야 버스를 탄 국민들이 멀미를 하지 않을 것이다.
육동인 논설위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