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맑은 내'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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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 소설가 >
나는 강원도 대관령 아래 산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서울이라는 곳이 참 궁금했다.
어린 시절에 들은 서울 얘기 중에 잊혀지지 않는 것 하나가 있다.
당시로서는 그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인데,서울 여자들은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는 것이었다.
매일 학교에 가는 우리도 하루에 한 번 세수를 할까말까 하는데,그리고 늘 밭에서 일하고 들에서 일하는 우리 어머니들은 하루에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은데 어떻게 서울 여자들은 하루에 두 번,아침 저녁으로 세수를 한다는 것일까.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서울 땅을 처음 밟아본 것이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그런 내게 청계천에 대한 오래된 기억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서울에 사는 친척 형을 따라 청계천이라는 곳을 처음 나가봤을 때 그곳엔 물이 흐르는 냇물은 없고 그냥 시멘트 '공구리'만 있었다.
그게 시골 청년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이상하게 여겼던 건 나보다 열 살쯤 나이 많은 그 형이 자기가 어렸을 때 그곳에서 가재를 잡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냇물에 콘크리트를 덮은 건 그보다 훨씬 나중의 일이라지만 나는 그 형이 어떻게 그곳에서 가재를 잡았다는 것인지 도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청계천에 대한 내 첫인상은 빗물에 젖고 매연에 찌든 흑백필름과도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거기 어느 노점,카바이드 불빛 아래에서 몰래 파는 빨간 표지의 성인소설과 성인만화는 당시 가장 청계천다운 물건처럼 내 눈에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5년 여름,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청계천에 나가보았다.
기억 속의 콘크리트를 뜯어내는 모습을 그동안 간간이 뉴스를 통해 보기만 했지 한번도 그곳에 가보지 않았다. 그러다 모든 공사가 거의 마무리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 청계천에 일부러 가 보았던 것이다.
세상은, 그리고 환경은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가는가에 따라 짧은 시간에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오래된 내 기억 속에 우중충했던 그 거리가 이제는 원래의 이름 그대로 '맑은내'로 되살아나 있었다.
그날,한여름인데도 하늘은 가을하늘처럼 푸르렀다.
가로수로 이팝나무가 심어져 있고 물가에 버드나무와 줄기사철,조팝나무,부들,쑥부쟁이,구절초,금불초,인동덩굴 같은 우리 산과 우리 들에 피는 야생화를 한창 심고 있었다.
그날 내가 꼽아본 풀만도 열 가지가 넘었던 것 같다.
대관령 아래에서 살았던 나조차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무와 야생화들이 서울 한복판에 되살아난 냇가에 새로 심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진귀해 오래도록 그 나무들과 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장통교 옆 한 빌딩에는 한 사내가 옥상에서 길게 늘어뜨린 동앗줄에 매달려 유리창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내의 눈엔 서울이,그리고 새로 단장한 청계천이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궁금했다.
나는 그 사내가 말할 수 없이 부러워보였고 또 말할 수 없이 크고 대단해 보였다.
나는 그 사내가 매달린 건물로 들어가 무작정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높은 층에 올라가 청계천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거기에 마치 꿈속처럼 나에게 처음 청계천을 보여주었던 친척 형의 어린 시절 모습까지 그대로 있었다.
이제 저 냇물에 고기들이 올라올 것이고,참게가 기어올라오고 새들이 날아와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를 것이다.
그 후에도 나는 몇 번 더 청계천에 나가보았다.
나갈 때마다 내가 처음 보았던 우중충했던 모습의 청계천과 지금의 모습이 너무 달라 과연 이곳이 내가 처음 보았던 그곳이었던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모두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도시의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강이 있어 서울이 아름답고,이제 청계천이 있어 도심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