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반으로 접어든 17대 국회의 두번째 국정감사는 큰 `돌출사건' 없이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국감 초반에 국회 법사위원들과 피감기관 관계자들의 술자리 논란 등으로 여야간 불필요한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대안제시라는 국감의 기본 자세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야는 남은 국감기간에도 정책감사에 집중하면서 소속 의원들의 개인기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 정책국감 치중 = 올해 국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여야가 모두 정책중심의 국감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청와대도 국감에서 제기되는 `적절한 지적'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관계부처의 신속한 대책 마련을 독려해 나가기로 했을 정도다. 특히 전통적으로 국감을 대정부 공격의 장으로 삼았던 야당도 근거없는 폭로와 국가기밀 누설 등 구태를 자제하는 `성숙함'을 보였다는 평가이다. 한나라당에서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권오을(權五乙) 의원의 활약이 대표적인 정책형 국감사례로 꼽히고 있다. 권 의원은 인터넷으로 발급하는 정부 민원서류 위.변조 가능성을 국감에서 제기했다. 권 의원의 지적 이후 정부는 인터넷 민원서류 발급을 잠정 중단하고, 곧바로 개선방안 모색에 나서는 등 모처럼 야당발(發) 정책국감의 `효험'이 톡톡히 발휘되고 있다. 보건복지위 소속 고경화(高京華) 의원도 중국산 김치가 인체에 해로운 납을 국산 평균에 비해 최대 5배나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공개했고, 법사위 김재경(金在庚) 의원은 로또복권의 당첨확률 조작 가능성을 제기해 주목받았다. 우리당도 이 같은 야당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발빠르게 문제점을 점검하고 대안을 내놓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당은 고 의원이 중국산 김치에 대한 조사결과를 공개하자 식약청과 긴급 당정협의를 소집해 식품 안전 관리 대책을 점검하고 올 연말까지 김치의 중금속 허용 기준을 마련키로 했다. 우리당은 또 인터넷 민원서류 위.변조 문제와 관련, 오는 4일 행정자치부 및 정보통신부와 연석회의를 열어 대책을 제시키로 했다. 야당이 지적한 문제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로 일관했던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우리당 의원 중에서는 삼성 소유.지배구조 개선 문제와 관련, 정부가 제출한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안에 대한 재점검 필요성을 꾸준하게 제기함으로써 삼성문제를 사회적 담론의 영역으로 이끌어낸 박영선(朴映宣) 의원의 활약이 돋보였다. 또한 문광위가 국감 기간 이례적으로 `고(故) 손기정 선수 금메달의 국가반환 및 국가문화재 지정 촉구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민병두 의원도 정책국감 분위기를 주도한 의원으로 꼽혔다. ◇여전한 구태 전체적으로 정책국감 분위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구태가 완전하게 근절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국회 법사위원들의 대구 술자리 사건이다. 여야는 소속 의원들이 국감기간에 피감기관 관계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는 부적절한 상황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돌리려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여야는 또 국감 증인 신청을 둘러싸고도 구태를 재연했다. 여야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장,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 등 상대방의 핵심지도부와 함께 이들의 가족까지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겠다면서 불필요한 갈등상황을 야기했다. 여야는 협상과정에서 상대방 지도부가 증인으로 채택돼야 하는 이유를 역설했지만, 결국 이들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는다는데 동의했다. 결과적으로 여야의 정치공세를 위해 소중한 시간만 낭비된 셈이라는 지적이다. ◇불성실한 피감기관 피감기관이 의원의 자료제출 요구나 답변 요구를 거부하는 불성실한 자세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 건설교통위원회의 한국철도공사에 대한 국감에서는 자료제출 부실이 문제가 돼 오는 5일 추가로 국감을 실시키로 했다. 이날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철도공사 측에 요청한 국정감사 자료 상당 부분이 제출되지 않았고, 고의 누락되거나 일부는 감사 전날 무더기로 도착해 감사에 지장을 초래했다고 항의했다. 최근에는 피감기관의 고압적인 자세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과기정위의 정보통신부 국감에서는 정통부 간부가 일부 의원과 고성으로 언쟁을 벌이다가 진대제(陳大濟) 정통부 장관이 "직원이 불성실한 행동을 한 데 대해 이를 통솔하지 못한 감독관으로서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이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이와 관련, 의원들도 불필요한 자료제출 요구를 자제하는 등 효율적인 국감을 위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제출의 분량이 너무 많은데다 무슨 목적으로 자료를 요구하는 지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감기관의 자료제출이 자연스럽게 부실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당 강봉균(康奉均) 의원은 "한 의원이 400∼500건의 자료제출을 요구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자료를 만드는데 엄청난 시간을 보내지만 실제로 국정감사장에서 자료를 활용하는 비율은 20∼30%도 안된다"며 "모든 것을 파헤쳐 보겠다는 식은 아무것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종반 전략 여야는 남은 국감 기간에도 정책국감과 대안제시국감이라는 키워드에 충실하겠다는 방침이다. 우리당은 정부의 실책에 대한 비판과 감시에 그치지 않고, 대안까지 제시해 책임있는 집권여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계획이다. 오영식(吳泳食)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올해 국감은 몇몇 돌출변수가 있었지만 현안에 대한 정책질의 중심으로 차분하게 진행돼왔다"며 "남은 국감기간 민생을 챙기고 사회 양극화 해소방안을 제시하는 정책국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남은 국감 기간 민생정책 국감의 기조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나경원(羅卿瑗)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박근혜 흠집내기와 대기업 이슈를 중심으로 하는 열린우리당의 포퓰리즘 국감 때문에 민생 국감이 빛을 잃는 것 같다"며 "남은 기간 한나라당은 국민 민생을 위한 국감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원내대표는 "이번 국감에서는 삼성 관련 이야기만 나오고 민생정책이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국감 중반기에는 서민의 눈에서 국정을 바라보는 국감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초반 국감에서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통한 `거대한 소수' 전략이 각 상임위별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하고, 남은 기간에도 이 같은 전략 기조를 유지해나갈 계획이다. koman@yna.co.kr aayy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