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최근 바이오 분야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바이오가 과연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국내 최초 국립대학 외국인 총장으로 선임돼 취임 1년을 넘긴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55)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내 기술과 산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부임 이후 '러플린 효과'라고 불릴 만큼 대학의 변화와 혁신에 큰 영향을 끼친 그는 지금 한국은 다음 세대가 먹고 살 산업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때이지만 바이오는 한국이 총력을 기울일 만한 산업은 아니라고 말했다.


"바이오는 제약회사와 맞물려 성장하는 산업이지요. 미국과 영국의 대형 제약회사들은 수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바이오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현재 한국은 줄기세포 등 일부 바이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처럼 초대형 제약회사가 없어) 장기적으로는 결국 시장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지요. 일본이 바이오에 상당한 투자를 했지만 썩 좋은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 정부나 산업계는 되새겨 봐야 할 것입니다."


그는 대신 한국의 전자산업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등 전자산업 분야의 한국 성장세는 눈부실 정도이고 미래에도 한국을 이끌어갈 견인차 노릇을 할 것입니다. 특히 삼성전자의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기술은 계속 세계 시장을 선도해 갈 것입니다."


러플린 총장은 전자산업과 함께 한국이 관심을 쏟아야 할 가장 유망한 분야로 에너지를 꼽았다. 고유가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곧 석탄이 석유를 대체할 시기가 올 것으로 예상돼 그동안 석탄 개발과 실용화에 많은 노하우를 쌓은 한국이 차세대 에너지기술 확보에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최근의 온라인 게임이나 영상 애니메이션 등 문화기술(CT)도 한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전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교수와 학생들이 제게 한국 드라마에 대해 아느냐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중국의 이른바 '한류 붐'은 상상 이상이었지요. 이 흐름을 컴퓨터 게임 등과 접목하면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러플린 총장은 성장 동력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보다 사람을 기르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최근의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문제점도 꼬집었다.


"창의성 함양만이 교육의 능사가 아닙니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너무 창의성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창의성 교육에 매달리다 자칫 학생들에게 잘못된 자유 의식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는 한국 대학 교수들의 연구 성과에 대한 소유 의식이 잘못돼 있고 지식재산권 개념도 희박하다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 교수들은 학교에서 연구하는 것과 학교 바깥에서 연구하는 것 간 구분을 혼동할 때가 많아요. 학교 내에서 시설과 인력을 지원받아 연구해 획득하는 성과나 결과물들은 학교 재산입니다. 이를 통해 학교가 수익을 얻어 다시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지요."


러플린 총장은 이에 따라 KAIST는 최근 전담 변호사를 통해 그동안 관행으로 여겨져 온 연구 성과의 학교 귀속문제 등 업무 처리 과정에 대한 완벽한 성문 규정과 지침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한국의 새로운 연구중심 대학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는 게 재임기간 중의 가장 큰 포부라면서 마지막 남은 임기 동안 대학 혁신을 이루는 데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글=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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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러플린과 연구 역정 >


△1950년 미국 캘리포니아 비살리나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남


△18세 때 버클리대 전기공학과에 입학,고등학교 때 성적이 반에서 30등 수준이었으나 수학 성적이 탁월해 버클리에 들어감


△2학년 때 물리학자 찰스 타우너에게 감명받아 물리학과로 전과


△22세 때 베트남 전쟁에 영향받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군에 입대해 독일에 근무


△24세 때 MIT 대학원 물리학과에 입학,양자효과 연구로 석사학위 취득


△이듬해 벨 연구소에 입사,실적 내지 못해 퇴사


△29세 때 MIT에서 이론응집 물리학으로 박사학위 취득,이후 리버모어 물리연구소에 포스트 닥으로 근무


△32세에 노벨상 수상 논문이 된 '양자분수홀 효과' 발표


△34세에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 부임


△48세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


△54세 KAIST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