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현장] (9) 한화석유화학 ‥ "현장이 곧 R&D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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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한화석유화학 울산공장.정문으로 들어서자 폴리에틸렌(PE)생산팀 건물 외벽에 또렷이 박혀 있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공장이 곧 연구소'라…. 언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궁금증이 다소 풀렸다.
PE공정을 총괄하는 조정실 바로 옆에 20평 규모의 연구실이 자리잡고 있다.
방을 가득 채운 각종 계측기와 파일럿 설비는 웬만한 회사의 연구개발(R&D) 센터를 방불케 한다.
하얀 가운 대신 파란 작업복을 입은 현장 직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 공장이 개발한 신제품인 초고함량 비닐아세테이트공중합체(EVA)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박노진 PE생산팀 차장은 "지난 7월 국내 최초로 개발한 고부가가치 명품 PE제품"이라며 "생산 기능과 R&D 기능을 한 곳에 모아놓고 신제품 개발에 투자해온 결과"라고 자랑했다.
한화석유화학 울산공장에서 혁신은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원가 절감은 기본.연구개발과 고객서비스를 현장에 접목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혁신이다.
이를 통해 신제품을 개발,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니 공장 스스로 가치혁신을 통해 '블루오션'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공장이 이 같은 의미의 혁신운동인 '지식점프전략'을 시작한 건 지난 2002년.당시 한화석유화학 여수공장에서 전임온 김대식 공장장(전무)이 지식경영을 통한 혁신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서부터다.
"중국산 저가 유화제품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때입니다.
30년 전에 지어진 이 조그만 공장으론 중국의 물량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보이더군요.
규모의 경쟁 대신 질(質)의 경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품종 소량생산의 형태로 고객의 요구에 맞는 신규 제품을 개발하기 적격인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지요."(김 공장장)
지식점프전략은 공장 내 조직을 개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나눠져 있던 연구기능과 생산기능을 제품별로 통합시켰다.
각 제품 생산팀 인원의 10%는 R&D 인력으로 구성했다.
공장 직원들이 직접 영업과 고객서비스에 참여토록 해 고객의 목소리를 생산 현장에 접목시켰다.'혁신의 중심은 현장'이라며 현장 직원들의 참여를 끊임 없이 독려했다.
이 같은 노력의 첫 결과물이 일반 폴리염화비닐(PVC)보다 부가가치를 훨씬 높인 고함량 코폴리머(Copolymer) 제품.중국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이미 밀리고 있던 범용 PVC보다 마진이 4배 이상 높은 제품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결과물이 바로 초고함량 EVA. PE생산팀 권기영 차장의 주도 아래 2002년부터 3년간 공들여온 회심의 프로젝트였다.
순수 자체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이 제품으로 울산공장은 연간 100억원대의 매출증대 효과를 낳았다.
엑슨모빌 미쓰이 듀폰 등으로부터 전적으로 들여오던 초고함량 EVA의 수입을 대체한 건 물론이다.
이 제품 개발로 지난 7월 한국경제신문사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주관하는 '이달의 엔지니어상'을 수상하기도 한 권 차장은 "경기 사이클과 같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R&D 센터가 아닌 현장에서 개발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공장의 혁신활동이 신제품 개발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지식점프전략은 신제품 개발을 포함해 공정 최적화를 통한 생산능력 증대,에너지 절감을 통한 원단위 개선 등 3가지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공장은 그동안 에너지원을 벙커C유에서 청정연료인 LNG로 완전 전환하고 폐열회수를 통해 외부에서 구입하던 스팀사용량을 줄이는 등의 에너지절감활동으로 연간 90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공정 최적화를 통해 증설을 하지 않고도 생산능력을 2002년에 비해 6배 이상 끌어올렸다.
지난 4년여간의 지식점프전략 활동을 통해 연간 256억원의 원가절감 및 매출 증대 실적을 달성했다.
김 공장장은 "울산공장에서 혁신은 '분모를 줄이는 게 아니라 분자를 늘리는 분자경영'을 토대로 하고 있다"며 "공장 자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 바로 혁신이라는 점을 늘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