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우수학생이 오지 않는 것을 걱정할 만한 여유조차 없어요. 수준에 관계없이 일단 들어온 학생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지키는 게 더 급하니까요." 김도연 서울대 공대 학장의 얘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 공대 신입생 중 20% 정도가 상반기에 이미 자퇴하거나 휴학을 했다. 5년 전인 2000년의 5%에 비해 그 비율이 무려 4배가 높아졌다. 대부분 대입시험을 다시 치러 의·치대나 한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공대를 떠났다는 게 학교측의 분석이다. 국내 최고의 과학기술 엘리트 산실로 불려온 서울대 공대에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이공계 대학생들의 엑소더스로까지 급속히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서울대 공대에선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수재 소리를 들으며 21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당연히 과학자의 길을 갈 것으로 예상했던 박모씨가 뜻밖에도 치과대로 편입학해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여러 교수들이 나서서 설득했지만 박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비단 박씨만이 아니다. 올해 치의학 전문대학원 합격자 339명 가운데 30%가 넘는 108명이 서울대 이공대 출신인 것(교육인적자원부 국감 자료)으로 나타났다. 재학 중에 공대를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졸업하고 나서도 상당수가 공학분야가 아닌 '옆길로 샌다'는 얘기다. 김도연 학장은 "학생들이 서울대 공대에 대한 '비전'을 잃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대학 차원에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졸업 후의 미래에 대한 학생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상담시간을 대폭 확대했다. 기계항공공학부 박희재 교수는 "강의가 끝날 때마다 3∼4명의 학생들이 와 공대 졸업 후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놓고 일부 학생들은 공학공부 자체에 대해 회의가 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학과 수업도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내용으로 바꾸고 있다. 기계항공공학부 전공수업인 '창의공학설계'의 경우 교수의 이론강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실습에 할애했다. 학생들에겐 처음부터 실습도구와 재료가 주어진다. 팀을 구성해 스스로 로봇을 만들면 그 결과가 그대로 학점에 반영된다. 서울대 공대는 교수들 간 경쟁체제가 전제돼야만 공대교육이 활성화되고 학생들의 이탈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대부분 서울대 공대출신으로 교수진을 채우던 순혈주의 전통을 폐기했다. 서울대 공대가 지난해와 올해 새로 임용한 교수는 총 49명. 이 가운데 40%에 가까운 20명을 다른 대학이나 서울대의 다른 학과 출신으로 채웠다. 과거 다른 대학이나 다른 학과 출신 교수의 비율이 10%대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특히 올 가을학기에는 외국인에게까지 문호를 열어 호주 출신의 로버트 메케이를 컴퓨터공학부 전임교수로 영입했다. 교수 재임용 때 적용되는 학생들의 평가도 교수들 간 경쟁을 촉진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 대외협력실 이동하 전문위원은 "한 학기 강의를 잘못했다가 다음 학기에 폐강된 사례도 있다"며 "교수들도 학생들 못지 않게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서울대 공대 한 조교는 "교수들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8년 전의 강의노트를 지금도 들고다니는 교수도 있다"며 "대학교육이 기업들의 수요에 부응할 수 있을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