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2세 경영인' 시대가 열리고 있다.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지 20여년이 지나면서 창업세대의 2세들이 잇따라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가족경영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창업세대가 2세에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중국 민영기업발전보고서에 따르면 300만개 민영기업 가운데 95%가 가족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영기업이 가장 많은 저장성에서는 저장대학산하 도시학원 등 상당수의 학교에서 가족기업 경영자의 자녀들에 경영관련 지식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이른바 '샤오쓰반(小師班)'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가족경영으로 승부 중국의 2세 경영자들은 1세대에 비해 고학력자들이 많다. 아시아 최고 갑부인 홍콩 창장그룹의 리카싱 회장은 중퇴 학력인 데 반해 장남 리저쥐는 미국 스탠퍼드대에 유학했다. 그는 현재 창장실업 부회장을 맡고 있다. 간판 주방기구 업체인 팡타이그룹의 마오중췬 총경리(35)는 상하이교통대 전력전자기술 석사 출신이다. 가전업체 거란스의 량자오셴 총재(40)는 중국 화란이공대를 졸업한 뒤 홍콩에서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의류업체 훙터우실업유한공사의 댜오메이장 회장(39)은 선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난징대 중앙당교(공산당 학교)와 미국 메릴랜드 등에서 연수한 뒤 푸단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중국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완샹그룹의 루웨이딩 최고경영자(CEO·34)는 미국에서 5년간 유학했다. 이들 2세 경영인 가운데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친의 사업을 한 단계 도약시켜 벌써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댜오메이장 회장은 '훙터우'가 유명 의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거란스의 량자오셴 총재는 업계에서 '가격 파괴자'로 불린다. 5년 전 아버지 량칭더 회장에게서 총재직을 물려받은 후 독자 개발한 에어컨 기술을 활용해 가격을 크게 낮춤으로써 에어컨 업계에 가격전쟁을 촉발,실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팡타이그룹의 마오중췬 총경리는 해외 유학을 만류한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26세 때부터 아버지 마오리샹 밑에서 경영 수업을 받은 인물로 주력 아이템인 점화장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을 감안,주방기구로 간판 사업을 바꾸는 승부수를 던져 성공했다. ◆전문경영인 기용도 활발 하지만 가족경영에 한계를 느끼고 전문경영인 영입에 적극 나서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중국의 창업주들에게도 경영권 승계가 고민거리로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유명 우유업체인 멍뉴그룹의 뉴건성 총재 겸 회장(49)은 최근 "내년에 총재직을 사임키로 했다"며 "전 세계를 상대로 후계자를 물색하겠다"고 발표했다. 단돈 10만위안(약 1250만원)으로 창업,5년 만에 매출을 18배로 키운 그가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이달 말까지를 시한으로 총재 후보 신청을 받고 있다. 중국 최대 오토바이 업체인 충칭리판의 인밍산 회장은 "1남1녀가 있지만 경영에 관심이 없는 자녀들에게는 사업을 대물림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캐시미어 업체인 내몽골 어얼둬스의 왕린샹 회장(44)도 "딸이 내 일을 물려받는 것은 불가능하고 내 회사에 입사하도록 배려할 수도 없다"며 "스스로 가야 할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민영기업의 평균 수명이 2.9년밖에 안 되는 것은 대부분 전문경영인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의 전문경영인 인재풀이 부족한 게 현실이어서 교육을 잘 시키면 2세가 더 낫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박승호 삼성경제연구소 베이징사무소장은 "중국은 개방 역사가 짧아 경영 경험이 많은 전문경영인이 소수에 불과하다"며 "이에 따라 경영 능력을 갖춘 인재들의 몸값이 급등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 같은 추세는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