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윤명로 화백(79·예술원회원)은 학창시절부터 겸재 정선을 예찬해 왔다. "겸재는 서양미술에서 세잔이 차지하는 비중만큼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게 그의 지론.윤 화백은 2000년부터 철가루를 이용해 발표한 신작들의 제목을 아예 '겸재예찬'으로 달았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기획초대전으로 7일 개막하는 '숨결'(Anima)은 윤 화백의 6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선보이는 회고전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학창시절 세잔과 보들레르를 사랑한 60년대 '원형의 시대'를 시작으로 70년대 '균열'시리즈,80년대 '얼레짓'시리즈,90년대 '익명의 땅'시리즈를 거쳐 2000년대에는 '겸재예찬'시리즈로 변화해 왔다. 최근작들은 '겸재예찬'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호흡' '숨결' '숨'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아니마가 화두다. 신작들은 '겸재예찬'에 비해 색상이 한층 단순해졌고 심상속 풍경을 구성하는 바위와 나무,계곡,물소리 등의 파장은 작아진 듯 하지만 화폭의 떨림과 울림은 훨씬 깊다. 윤 화백은 색이 고운 철가루를 접착제와 섞어 사용하는 데 잘 다루면 철화백자의 훌륭한 재료가 되기도 한다. 화면을 자세히 보면 드러나는 누런 빛깔은 녹이 슨 자국이다. 그리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색이 변한 것이다. 작가는 재료로 고민하던 중 2000년 우연히 청계천에서 철분가루를 발견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추상회회와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 온 그는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왔다. "나의 그림은 무작위한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윤 화백은 순간적이면서 일회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무작위의 의미에 대해 작가는 "마음대로 형성되는 무질서라기보다는 충분한 사고를 거친 뒤에 오는 자유"라고 설명한다. 2000년 들어 '겸재예찬'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그는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일종의 각성이었다"고 말한다. 30일까지.(02)720-1020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