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최저가낙찰제 확대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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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대한민국이 가장 내세우고 싶고 또 세계가 인정하는 국가경쟁력 중의 하나가 'IT Korea'다.
그런데 'IT 강국 한국'의 이미지가 추락 위기에 몰려 있다.
참여정부부터 추진해온 '전자정부' 사업의 하나인 전자민원 사업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결함의 원인이 정부의 최저가낙찰제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을 보고 지난 2001년부터 국내 공공 공사에 도입된 최저가낙찰제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더구나 전자민원 사업은 예정가의 60% 이하에서 계약이 이뤄졌다고 하니 최저가로 낙찰되는 국내 공공 공사가 안고 있는 위험부담은 두려울 정도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국내 공공공사는 2001년 이후 2005년 6월 현재까지 약 215건이 최저가낙찰제를 통해 발주됐다.
500억원 이상 공사 중 최저가로 낙찰된 공사가 사용단계에 접어들려면 아직 2년 정도의 기간이 남아 있다.
최저가낙찰제로 계약된 모든 공사에서 후유증이 생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용 중 어떤 형태로든 문제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만은 분명하다.
500억원 이상의 최저가낙찰제 대상 공사의 평균낙찰률이 58%라는 사실은 전자민원 사업의 60%보다 낮은 금액이다.
건설공사에 무조건적으로 최저가낙찰제를 적용하는 것은 국가의 손실을 담보로 한 모험적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모험에는 반드시 후유증이 따르게 된다.
영국이나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최저가낙찰제를 최근에 포기한 이유도 모험에 따른 대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최저가낙찰제는 무조건적으로가 아니라 극히 선별적으로 선택하고 있으며 턴키와 같은 다른 구매방식을 택하는 비율을 높여가고 있는 것은 후유증을 염려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건설공사에서 최저가낙찰제로 인한 후유증은 공사기간 중보다 완공 후 사용기간 중에 서서히,그리고 길게 나타난다.
최저가격으로 구매한 개별 상품은 개인 손해에 머물지만 건설상품의 부실화는 불특정 다수의 인명과 사회적 비용,그리고 국가의 이미지까지 추락시킬 만큼 파장이 크다.
건설상품이 자동차나 컴퓨터와 같이 완성된 제품으로서 정가를 매길 수 있는 것이라면 구매자가 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출수록 경제면에서 유리해진다.
이는 품질과 성능이 확정된 완제품을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건설상품은 공산품과 달리 완제품이 아닌,주문에 의해 생산되는 서비스상품이기 때문에 구입 가격을 낮출수록 구매자와 공급자 모두가 계약과 동시에 위험 부담을 안고 출발한다.
더구나 건설산업이 '선(先) 주문,후(後) 생산'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자민원사업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낮은 가격만큼 완공 후 후유증이 나타날 위험부담이 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국내 공공공사에서 최저가낙찰제의 유효성을 검증도 하지 않은 채 또다시 확대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미 최저가낙찰제로 계약된 215건의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국가의 손실을 담보로 한 모험적 선택이다.
최저가낙찰제의 위험부담을 줄이려면 기왕에 발주된 공사는 감리 및 감독을 강화해서라도 부실공사의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실공사 외에도 전자민원 사업과 같이 최저가에 낙찰된 원도급자가 비용부담을 힘 없는 하도급자 및 근로자에게 전가시켜 후유증을 증폭시키는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최저가낙찰제로 가야 한다는 원칙도 좋지만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선택이 돼서는 안된다.
현재 진행중인 215건의 공사가 완성된 후 평가를 통해 완결성을 검증한 후에 확대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