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른바 '삼성 때리기'가 계속되면서 당사자인 삼성은 물론 재계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X파일'과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놓고 거센 논란이 벌어질 때만 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해왔던 다른 기업들은 반기업정서가 확산되고 정치권이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고유가 행진과 환율 급변 등으로 경영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각종 규제와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려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한 대기업 총수는 얼마 전 사석에서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삼성만의 일이라고 여겨왔지만 가만히 보니 나중엔 우리 회사의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기업 경영에 정치 논리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걱정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삼성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기업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며 "규제를 위한 법과 제도가 계속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에 이뤄진 행위를 현재의 잣대로 평가하고 여기에 국민정서까지 들이대면 어떤 기업인들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업 흔들기도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악에 대한 판단이 무 자르듯이 이뤄질 수 없는 사안인데도 획일적인 흑백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 공화국론'으로 시작된 삼성 견제는 지배구조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면서 '삼성 파괴론'으로까지 치닫는 양상이다. 일부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정치권 인사들은 삼성이 지난 4일 '삼성에버랜드 CB(전환사채) 사건'에서 관련자들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CB거래에서 발생한 이건희 삼성 회장 가족들의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재계는 이런 양상이 삼성에 대한 국민 감정이 악화하고 있는 틈을 타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이 삼성그룹에 과도한 공격을 펼치면서 사회 전반에 반기업정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청와대가 금산법 개정안과 관련해 정부의 '삼성 봐주기'가 없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나름대로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금산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5일 재정경제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청와대가)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을 분리대응하자는 것은 삼성 살려주기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삼성 봐주기'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5일 국회 재경위에 증인으로 출두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른 '파렴치범'이나 된 듯 윽박지른 행태에 대해서도 비난이 일고 있다. 사업을 챙기느라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활동하고 있는 CEO들이 국회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