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골드스미스의 꾀‥석혜원 <메트로뱅크 부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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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원 < 메트로뱅크 부지점장 marianneseok@yahoo.com >
직업의식이 은연중에 나타나는 것인지 수표를 받으면 발행날짜를 본다.
오래 전에 발행된 수표라면 발행은행과 지점을 본다.
그리고 골드스미스를 생각한다.
17세기 런던에는 금세공을 하며 부자나 상인들의 금화나 귀금속을 보관해 주던 사람이 있었다.
이들을 골드스미스라고 불렀다.
이들은 금화나 귀금속을 맡으면 보관 영수증인 골드스미스 노트(Goldsmith Note)를 써 주었다.
그리고 이것을 가져가면 언제든지 맡아둔 물건을 돌려주었다.
골드스미스 노트가 일반화되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금화로 바꿀 수 있는 노트를 금화와 똑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금화 대신 바로 노트로 물건 값을 치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골드스미스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일정 부분 노트에 대해서는 교환 요구가 없다는 점이다.
바로 노트로 지불할 수 있으니 굳이 물건을 사기 위해 금화나 귀금속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노트를 가지고 금화나 귀금속을 찾겠다는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금화나 귀금속을 찾아야 할 이유와 시기가 다르니까.
"그렇지.이렇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골드스미스들은 꾀를 부렸다.
그들은 실제 맡아둔 금화나 귀금속보다 더 많은 양의 노트를 만들어 빌려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노트를 들고 골드스미스에게 찾아가면 금화나 귀금속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이자를 주고 노트를 빌리기도 했다.
신이 난 골드스미스들은 금세공은 뒷전으로 하고 노트 장사에 몰두했다.
나중에는 은행도 만들고 자체적으로 지폐 발행까지 했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노트를 빌리는 이자율이 자꾸 올라가자 사람들의 불만도 따라서 높아졌다.
명예혁명을 성공시킨 신흥 귀족들이 이를 보고만 있겠는가.
그들은 1694년 잉글랜드은행을 만들었고,잉글랜드은행만 지폐 발행을 할 수 있게 제도를 바꾸었다.
하지만 기존 은행들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고객들이 돈을 맡긴 후 지급 지시서를 발행하여 돈 대신 지급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을 재빨리 생각했다.
그리고 지급 지시서를 발전시킨 수표를 만들어 내고 이를 활성화시켰다.
수표가 돌고 도는 동안 은행은 수표 발행을 위해 고객이 맡긴 돈을 공짜로 이용한다.
고액권 논의가 현실화되어 10만원권 지폐가 나오면 10만원권 수표는 사라질 것이다.
그 자리를 채울 골드스미스의 꾀는 무엇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