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깨달음은 일상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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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나비가 지나간 뒤에 가을비가 며칠 동안 여름 장대비같이 쏟아졌다.
들판에 곧 수확할 벼들이 쓰러졌다.
오늘은 마침 쨍하니 볕 들고 쪽빛 하늘은 참했다.
여름 내내 그악스럽던 푸새것들에는 누른빛이 든다.
콩밭머리에 서서 여문 봉숭아씨방 터진 듯 뿔뿔이 흩어지는 새떼의 향방을 눈으로 쫓다가 문득 황토 뭉개진 듯 붉은 하늘에서 놓친다.
추석 즈음에도 푸르던 대추 열매에도 붉은 빛 돋았다.
푸른기 도는 울안 저녁빛 속에서 늙은 지구가 진절머리를 치며 몸비늘을 떨군다.
쇠죽가마에 식은 찻물 괴듯 괸 맑은 가을비는 한 뼘 깊이로 투명한데 그 위에 붉고 노란 가랑잎들이 고요히 떠 있다.
내 몸 누일 위도(緯度)에 완연한 가을이구나! 보람없이 놓쳐버린 시절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오롯해지는 걸 보니 가을은 저 몸의 안쪽으로 먼저 안착하나 보다.
어린 별 두엇 뜬 초저녁 하늘을 등지고 부엌에 들어가 혼자 먹을 저녁밥을 짓는다.
그러잖아도 뭘 먹을까 하던 참에 태정이 어머니가 텃밭에서 딴 애호박 두 덩이를 갖고 어둑어둑한 대문길을 밟으며 내려왔다.
오늘 저녁반찬은 호박젓국이다.
애호박 썰어 참기름 두른 냄비에 볶은 뒤 마늘 한 숟갈,새우젓 한 숟갈,고춧가루 약간,물 한 컵 넣고 자작자작 물 졸아들 때까지 끓인다.
날 궂어 창호지 바른 문짝에 싸락싸락 싸락눈 부딪치는 초겨울 저녁나절 쌀뜨물 받아 새우젓 풀어 끓인 어머니의 호박젓국이 내 피를 만들고 뼈를 키웠다.
전기밥통에서 김이 오른다.
생쌀들은 전기밥통 속에서 눈감고 열반에 드는 것이다. 오호라,밥 먹는 것은 아직 열반에 들지 못한 자가 이미 열반에 든 것들을 몸 안으로 모시는 일이었구나! 금방 퍼낸 밥에서 김이 오른다. 밥 한 공기와 호박젓국과 열무김치가 전부다.
밥 먹을 때 가끔은 클래식 CD를 건다.
요즘은 오페라를 자주 듣는다.
침묵 속에서 입에 밥과 반찬을 떠 넣고 꾸역꾸역 씹는다.
입에 들판이 통째로 들어온다.
입에 텃밭이 들어온다. 입에 협곡이 들어온다. 입에 빗방울이 들어온다.
입에 햇빛이 들어온다.
입에 강물이 들어온다.
흙냄새 향긋한 애호박은 참기름 새우젓 속에 뒹굴며 제 속에 지그시 품고 있던 진국을 기어코 토해냈을 것이다.
호박젓국은 씹을 틈도 없이 녹고 입맛이 동해 밥 한 공기 더 뜨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는다.
심심하고 따뜻한 호박젓국을 뜨며 먼 곳에서 홀로 밥 뜨실 어머니를 생각하고 입속에 들어온 밥알을 단물이 날 때까지 오래오래 씹는다.
밥알을 씹을 때 내가 살아 있구나 하는 엷은 감동이 감전된 듯 온몸에 찌르르 흐른다.
지극한 깨달음은 범용한 형상으로 온다.
몸은 검소한 자산이다.
흠 많은 인간에겐 몸뚱이 하나가 가진 것 전부니 이 몸이 곧 성전(聖殿)이다.
성전에 바칠 음식이니 밥 짓는 노동은 고결하다.
날마다 목구멍에 들어갈 밥을 짓는 노동에 깃든 인류의 오랜 노고에 대해 생각한다.
그 노고의 체계 속에 문명의 본질이 녹아 있다.
밥 짓는 일은 밥 버는 일과 마찬가지로 숭고하다.
자기 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할 때 그 일은 더욱 숭고해진다.
이 숭고한 노동을 전적으로 여자에게만 맡겨서는 안 될 일이다.
역사는 여자들의 이 오랜 숭고한 노동에 대한 독과점의 불평등을 기술하지 않는다.
역사를 쓴 건 전부 어리석은 수컷들이었다.
그들은 이 기쁨을 가끔씩 남자들도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무지몽매가 따로 없다.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는 동안 밤하늘엔 집 나온 별들이 더 많아졌다.
어두워진 앞산 바라보다가 달의 조도(照度)를 조금 올리고 풀벌레의 볼륨을 한껏 높인다.
복사뼈 위 살가죽이 자꾸 마른다.
지금쯤 신흥사 저녁예불 알리는 범종(梵鐘) 운 뒤 설악산 화채봉 능선 위로는 보름 지난 달 둥두렷이 떠올랐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