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보일러업계 성수기다. 업체들마다 30억~40억원대 광고비를 책정해 치열한 시장쟁탈전을 벌인다. 일부 CF에는 출연료가 수억원대인 빅모델까지 동원된다. 하지만 귀뚜라미 보일러는 아마추어 모델을 기용하는 독특한 전략으로 비용을 줄이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거꾸로,거꾸로"를 외치는 경비아저씨,목욕하는 아저씨로 나오는 화제의 주인공은 오경수씨(39).5년째 귀뚜라미 모델로 맹활약하고 있는 오씨는 전문 모델이 아니라 광고회사 제일기획의 디자이너다. 그는 2001년 경쟁 프레젠테이션(PT) 때 이동국 귀뚜라미 회장 앞에서 직접 광고시안을 발표한 인연으로 모델로 나서고 있다. 당시 오씨의 리얼한 설명을 듣고 있던 이 회장이 즉석에서 메인 모델로 발탁한 것."보일러 광고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서민적인 사람이 제격"이란 것이 이 회장의 지론이다. 코믹하고 서민 이미지가 물씬 풍겨나면서 연기까지 받쳐 주는 오씨가 귀뚜라미 보일러 모델로 적격이었던 셈이다. 광고주의 간곡한 성화에 못 이겨 출연한 광고는 '대박'을 터뜨렸다. 오씨가 등장한 후 귀뚜라미 CF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광고인지도 조사에서 매번 1위를 차지했다. 시장점유율에서도 1위 자리를 확실히 굳혔을 뿐 아니라 후발업체와의 격차를 2배 이상 벌려놨다는 게 귀뚜라미측의 설명이다. 모델로서 오씨의 위상도 부쩍 높아졌다. 오씨를 귀뚜라미 평생모델로 중용하라는 이 회장의 특별지시가 내려졌고 모델 시장에서도 '귀하신 몸'이 됐다. 오씨는 2001년 첫 출연 당시 수고료 명목으로 교통비만을 받았다. 하지만 광고효과가 높아지자 광고주측에서 자발적으로 출연료를 인상시켜 이젠 모델료가 웬만한 조연 모델급 수준이다. 섭외 요청도 쇄도하고 있지만 오씨는 일부 고객의 광고에만 응할 뿐 거절하고 있다. 오씨는 "직접 기획한 광고 컨셉트를 더 잘 표현할 것 같아 출연했을 뿐 모델보다는 영원한 광고인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오씨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님(광고주)'의 간곡한(?) 요청으로 출연한 광고가 벌써 여섯 편.오씨는 귀뚜라미 보일러를 비롯 하이모,에스원,스카이라이프,KTF,BBQ 등에서 특유의 '끼'를 발산해 왔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