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도자기에 빠진 남자 ㈜서화 이상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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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도자기 빚는 게 너무 좋아서 평생직업 할 겁니다."
여주시 가남면 은봉리에 위치한 ㈜서화의 공장 한 켠. 전기물레에 앉아 도자기를 빚고 있는 이상우씨(26). 그의 모습은 할리우드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반바지 차림에 작업 앞치마를 아무렇게나 두른 옷차림도 그렇지만 빠른 듯 천천히 균형을 잡아가며 흙에서 형태를 만들어가는 손길은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이씨는 강남의 '사모님'들이 선호한다는 고가의 전통도자기 '광주요'와 생활자기 '아올다'로 유명한 도자기 제조유통업체 ㈜서화에서 근무하는 신입사원이다. 지난 2월 입사해 현재 견본제작팀에서 일한다.
그의 업무는 상품개발팀에서 내려온 디자인이 제품으로 대량생산되기 전 미리 수작업으로 견본품을 제작하는 일. 물레나 판 작업을 거쳐 만든 견본품으로 그릇의 무게는 적당한지,세워놓았을 때 안정감은 있는지,설거지를 하는데 불편하지 않은지 등을 직접 확인한다. 다른 식기세트와 제대로 조화를 이루는지도 빼놓지 않는 점이다. 서화의 중저가 생활자기인 '아올다' 제품들은 이렇게 그의 손을 거쳐 대량생산이 결정된다.
이씨는 "흙에 손이 닿으면 편안함을 느낀다"며 "직장생활이라고 하기엔 너무 재미있다"고 말한다. 견본품 제작은 성형에 하루, 건조에 하루, 유약 바르고 초벌 재벌을 하는 데 며칠이 걸려 거의 일주일이 소요된다.
인근의 청강문화산업대 도자기디자인학과(99학번)를 졸업한 이씨는 주변의 친구들이 전공을 살린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하는 반면 비교적 쉽게 졸업과 동시에 취직했다. 성공요인은 일찌감치 자신이 원하는 일을 결정하고 이를 준비해 온 데서 찾을 수 있다.
서울에서 자란 그가 이천의 2년제 전문대학에서 도자기디자인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소신껏 전공을 선택했다고. 어려서부터 프라모델 만들기 등 손쓰는 일을 좋아해 부친은 자동차 정비기술을 익히길 바라셨단다.
서울 창동역 근처에서 노점 과일상을 하고 동대문에서 옷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어 대학을 마쳤다.
지난 2월 ㈜서화의 채용공고를 보고 원서를 냈던 그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실무진 면접과 사장 면접을 통과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이천도자기축제 등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하고 전통자기를 만드는 작가들의 작업에 참여하면서 경험과 인맥의 폭을 넓힌 것이 입사에 큰 힘이 됐다. 이씨는 "입사원서를 낸 후 주변에서 알던 분들이 추천을 많이 해 주셔서 의외로 쉽게 입사가 결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 마지막 한 학기를 교수님들의 허락을 받아 이천의 한 도자기 업체 생산라인에서 일하기도 했다. 직접 기계를 돌리는 작업과정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화 상품기획팀의 강진명 과장은 "상우씨는 직장생활 경험이 없는 신입사원이지만 준비가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업무에도 열성적이라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이씨는 직접 만들었지만 색상과 모양이 적당하지 않은 실패작을 집으로 가져가 사용해 본다. 인근에 있는 그의 자취방에는 반찬 보관용 플라스틱 그릇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든 식기가 직접 만든 작품들이다. 심지어 찌개를 끓이는 냄비도 내열자기다.
"가마에서 잘못 나오면 수도 없이 깨버립니다. 그런데 마치 제가 낳은 자식처럼 예쁘고 아깝잖아요. 그래서 직접 집에서 사용해보고 주부들의 생각을 유추하는 데 사용해요."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놀 나이(?)지만 산에 둘러싸인 공장에서 도자기 빚는 것이 가장 좋다는 이씨. 그는 "분청토 청자토 등으로 만든 우리 회사의 전통자기는 볼수록 독특한 멋이 우러나는 제품"이라며 "장인정신을 가지고 내가 선택한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연봉은 일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이씨는 "월급이 전부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위한 직업이 가장 좋은 것 아니냐"고 도리어 반문했다.
여주=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