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글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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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위기에 처했다고 야단들이다.
한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어도 아닌 기이한 언어가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각종 기호와 부호,축약언어,그리고 이모티콘까지 뒤섞여 '외계인의 글자'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래도 종전의 1세대 통신언어는 '줄임말'이라는 일부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지만,지금의 2세대 통신언어는 전혀 다르다.
글씨와 발음의 형태대로 갖가지 언어들을 조합하는 유희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이러한 한글파괴의 현장에는 청소년들이 있다.
표준어가 무엇인지 모른 채 글을 쓰고 문법은 아예 무시되기 일쑤다.
얼마전 인터넷에 연재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귀여니의 소설 '그 놈은 멋있었다'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열광했던 사실만 봐도 그렇다.
한글파괴 소설에 우리 글을 배우는 학생들이 열광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구직자들의 자기소개서에도 채팅용어들이 스스럼없이 쓰여지고 있다.
'했음돠''ㅋㅋㅋㅋ''즐' 등은 보통이고 비속어까지 아무런 생각없이 등장한다.
공중파 TV의 오락이나 연예프로가 문제되는 것도 언어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현상은 당초 법정공휴일이었던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제외한 것과도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 해서 유네스코가 훈민정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영국의 언어학자인 샘슨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글을 두고 "인류가 이룬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중의 하나"라고 칭송하는 마당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 글을 비하하는 꼴이 돼 버린 셈이다.
마침 내일이 훈민정음 창제 559주년을 맞는 한글날이다.
몇몇 뜻있는 인사들이 우리 글의 우수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왠지 쓸쓸한 분위기다.
한류열풍이 동남아를 지나 태평양을 건너고 아울러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지고 있다고 야단들인데,그 근간이 되는 한글이 오히려 초라해지는 모습이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