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前총리 특별 기고] 기본을 다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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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라의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19세기 말에는 개화,20세기 중반에는 근대화,그리고 21세기로 들어선 오늘에는 선진화가 시대적 과제로 강조되고 있다.
개화나 근대화나 선진화는 결국 세계 정세 변화에 대응해 우리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추구하는 노력이었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맥을 같이하고 있다.
지금의 선진화는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해 정치,사회,경제 각 방면에서 후진적인 발상과 관행 및 제도를 혁신해 살기 좋고 사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세계에서 존경받는 국격(國格)을 갖추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선진화를 위해 어떠한 변화가 있어야 하나?
◆국가이념을 재확인하자
개화주의 시대의 선각자들은 개화의 목적을 '허구와 관념을 배척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가치관에 입각해 개인의 삶과 국정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개인의 삶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자유와 빵,안전이 그것이다.
자유를 제도화한 것이 민주적 대의정치 체제,자유경제 체제,그리고 이 두 가지를 지키기 위한 외교안보 체제다.
이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인데 그것은 곧 우리나라의 국가이념이자 문명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국가이념이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큰 소리를 내는가 하면,일부 지식인은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민족적 통합이 최고의 가치이고 이념과 체제 문제는 통일 후에 해결할 수 있는 민족 내부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념과 체제를 무시한 통일은 남·북 예멘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내부 혼란과 내란을 불러오고 평화적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
평화적 통일이란 북한이 독재체제를 버릴 때에만 가능하다.
이념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맹목적 반미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국민 대다수가 자유 수호의 상징으로 보고 있는 인천의 맥아더 장군 동상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가 헌법에 명시된 국가이념과 관련이 있는 문제이나 정치 지도자들은 민주화에 따른 다원화 현상으로 치부하고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다원화만 있고 통합의 원리와 기능이 없으면 그 사회는 지리멸렬 상태가 돼 민주주의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어차피 통일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이념과 체제의 문제인데 잘 못하면 남한에서 6·25동란 전에 겪었던 격렬한 좌·우 투쟁이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지도자와 국민이 국가이념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변명인즉 우리의 국가이념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터에 국가이념을 강조하는 것은 '소모적'이고,국가이념을 내세우면 북한 정권과 대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변명은 이념 갈등이 이미 위험 수위에 이른 오늘의 현실에 눈을 가리고 대북 정책에 원칙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시장경제 원리 존중해야
자유경제 혹은 시장경제 체제를 받드는 것이 우리의 국가이념이다. 또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시장경제는 경쟁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경쟁이 있으면 반드시 승자와 패자,강자와 약자,부자와 빈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이원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 국가 운영의 기본 과제다.
승자가 패자를 멸시하고,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부자가 빈자를 돌보지 않으면 자유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양극화 현상에서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생겨났는데,이 체제 아래에서는 빵과 자유가 양립할 수 없고 결국 두 가지를 모두 잃는다는 것이 20세기 공산주의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그러나 빈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부자를 배척하면 부자가 돼 큰일을 해 보겠다고 모험과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가 정신을 꺾게 되고 경제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부자 자리에 올랐는데 그것은 그가 컴퓨터 사용을 전 세계에 보급해 세상을 바꾸어 놓은 위대한 성취의 결과다.
그러나 그는 막대한 재산을 저승으로 가지고 갈 수는 없다.
결국은 사회로 환원될 것이다.
그러므로 경쟁과 형평을 적절히 조절해야 시장경제는 발전과 향상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평준화를 위해 경쟁을 봉쇄하면 발전과 향상이 없는 반면 경쟁의 공정성을 무시하면 약육강식의 사회가 된다.
이러한 기본 원리에서 정부 경제 운용의 네 가지 원칙이 도출된다.
첫째는 자율과 경쟁의 원칙이다.
정부는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창달하고 가급적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정부의 규제가 적고 민간의 창의와 이니셔티브를 존중하는 나라일수록 국제 경쟁력이 강하고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둘째는 공정경쟁의 원칙이다.
경쟁의 규칙을 만들어주고 그를 위반하는 자를 징계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이다.
정부가 정치적 편의를 위해 범법 행위를 묵인하거나 관용한다면 그 자체가 불공정 경쟁의 원인이 된다.
일부 지역이나 집단의 이기주의에 굴복해 법을 공평하게 시행하지 못하면 무질서와 포퓰리즘에 빠지게 된다.
셋째는 공정 분배의 원칙이다.
무엇이 공정한 것이냐가 문제이나 분배 정의에 관한 철학적 논의는 접어 두고,자유경제 체제 아래의 분배에 관해서는 학자들이 대체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생산 기여도에 따른 차등 분배의 원칙.생산물의 시장가치 창조에 대한 기여도와 그를 위한 노력과 투입 비용에 따라 차등 분배를 한다는 원칙이다.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더라도 큰 부분을 정부의 세금으로 빼앗기고 모든 사람의 월급이 비슷해진다고 하면 열심히 일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기업 차원의 분배에서는 노·사 간의 분배가 중심 문제이다. 차등 분배의 원리에 따라 노동의 생산성을 분배 기준으로 해야 하지만,그 외에 노사 투쟁,정부 정책 등 다른 요인이 임금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업은 경영을 투명화하고 노동은 생산성 기준을 존중해 상호 이해와 상호 협력으로 노사 간의 분배를 결정하는 것이 상생의 길이다.
기업의 이윤을 부인하면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사업을 경영할 의욕이 없어지고,결과적으로 경제는 침체를 면치 못할 것이다.
다음은 기회 균등의 원칙이다.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는 농부가 기업주가 될 수 있고,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될 수도 있고,노동자가 경영자가 될 수 있고,빈자가 부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에서는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자신의 불우를 전적으로 사회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자신의 창의와 노력과 향상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마지막으로 생활 보호의 원칙.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절대 빈곤은 없애야 한다.
지체 부자유자뿐만 아니라 탈북자,이북동포들에게도 나눔이 있어야 한다.
성장 우선이냐 분배 우선이냐 하는 논쟁이 있으나 만약 공정 분배가 아니라 균등 분배를 의미한다면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분배 원칙을 준수하면 성장의 요인이 될 것이다.
성장 없는 분배,분배 없는 성장은 허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분배 상태를 개선하자면 먼저 경제 성장을 촉진해 실업자를 줄이는 일부터 해야 한다.
다음에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충실화하면 된다.
넷째의 시장경제 운영 원칙은 시장 보완의 원칙이다.
사회 문제를 시장 기능만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시장 실패'라 한다.
시장 기능이 교육,환경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시장의 기능을 보완하는 것이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서는 직접 규제보다 시장 친화적인 방법을 사용할 때 보다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도덕적 견지에서 규제를 가하는 것보다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 달성의 지름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점과 관련해 정부는 일부가 나쁘다고 하여 전체를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것은 시장경제 원리와 맞지 않는다.
우리의 역대 정부는 그런대로 이상의 4대 원칙에 따라 정책을 추진해 왔고,그 결과 1인당 소득 1만4000달러의 고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상기 원칙에 따라 새로운 발상과 제도를 개발해야 할 때인데 오히려 시장경제 체제 자체를 불신하는 풍조가 높아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개혁,개혁하고 있는데 정말로 필요한 개혁은 시장경제의 운영 원칙을 되살리는 개혁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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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덕우 전 총리는 ]
남덕우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은 한국경제 현대사(史)의 산 증인이다.
경제 개발이 본격화한 1960년대 중반 체계적인 개발이론을 제공한 '서강학파'의 좌장이었고,경제 도약이 시작된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재무부 장관과 경제부총리,국무총리 등을 맡아 경제개발계획을 진두지휘했다.
공직 퇴임 후에는 최장수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내면서 수출입국 일선을 지켰다.
△1924년 10월10일 서울 출생
△1950년 국민대 정치학과 졸업
△1952년 한국은행 입행
△1956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61년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제학 박사
△1954∼64년 국민대 교수
△1964~69년 서강대 교수
△1969∼74년 재무부 장관
△1974∼7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1979년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
△1980∼82년 국무총리
△1983∼91년 한국무역협회 회장
△1983년∼현재 산학협동재단 이사장
△2003년∼현재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2005년 7월~현재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