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표준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추진과 표준화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표준정책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점에서 14일'제6회 표준의 날'을 맞은 소감은 어떤가. ▷김혜원 기술표준원 원장=매년 10월14일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정한 '세계 표준의날'로 우리나라도 2000년부터 같은 날을 '표준의날'로 정해 기념해 오고 있다. 국내의 표준화 역사는 1883년 설립된 전환국 소속 분석시험소에서 화폐 및 금속광물을 분석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본격적인 표준화사업은 1961년 9월 공업표준화법 제정에 따라 KS제도를 도입한 데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KS제도는 우리 산업의 중추적인 기술 인프라로서 그동안 양적·질적으로 큰 발전을 이뤄 왔으며 특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작과 함께 산업표준화는 우리 산업 성장의 주춧돌로 자리매김했다. 그동안 기술표준원은 KS규격을 국제표준인 ISO,IEC(국제전기표준회의)규격과 부합시키며 국제화에 부응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0년 전 8700여 종에 불과했던 국내 국가표준이 이제는 2만여종에 이른다. 또 '보다 안전한 세상을 위한 표준(Standards for a safer world)'이라는 ISO의 올해 슬로건에서도 보듯 최근에는 표준의 적용범위가 안전 환경 복지 서비스와 같은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어 기술표준원도 이 분야 표준화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 올해에도 기술표준원은 협회·학회 등 표준개발 능력을 갖춘 민간기관을 국가표준 규격 제정에 활용하는 표준개발협력기관(PSDO) 제도 도입, 기술개발과 표준의 연계방안 모색, 남북한 표준 통일화를 위한 기반 조성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공안내 그림표지 및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기준 표준화 등 생활표준의 확산에도 주력해 기업과 국민들에게 표준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사회=입법부에서도 표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히 표준화 부문의 발전을 위해 많은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김태년 의원은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정부의 표준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김태년 의원=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사실상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 됐다. 기술의 발전속도와 수준의 차이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제 차별성과 경쟁력은 누가 국제표준 등과 같은 원천을 확보하고 선점하느냐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우리의 표준정책과 제도는 여전히 뒤떨어져 있다. 부처간 업무 분산, 통일적인 표준정책 수립과 진행능력 부족, 예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정부와 국회가 표준경쟁력을 매우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개인적으로는 표준 관련 정책을 범부처적이고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관을 국내에 설립하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에 걸맞은 예산 확충에도 힘을 기울일 생각이다. ▷사회=21세기에는 표준에 대한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전환돼 바야흐로 글로벌 스탠더드(국제표준)시대에 돌입했다. 이제 표준의 시장선점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표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어 표준선진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민간 기업이 표준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점에 대해 논의해 달라. ▷이계형 표준협회 회장=모든 혁신은 표준의 결과물이고 핵심적인 혁신은 표준없이는 불가능하다.기업이 표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시적인 이익으로는 표준화된 제품 생산으로 생산 설비를 집중시킬 수 있어 제조원가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맞춤 신사복의 경우 고객마다 다양한 치수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부수적인 생산시설이 필요하지만 기성 신사복의 경우 인체치수 표준화로 표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생산시설 집중화 및 생산성 증대를 통해 제조원가를 감소시킬 수 있다. 종합적으로 표준이행에 따라 야기되는 산업계의 전반적인 이익은 규모의 경제에 의한 생산 및 연구비용의 감소, 검사 및 측정비용 등 구매에 소요되는 정보비용 감소, 서비스 및 생산과정의 단순화 등으로 그 효과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사회=세계시장이 단일화되고 하나의 표준이 통용되는 시대에 있어서 국제표준의 중요성이 날로 증가되고 있다. ▷김 원장=WTO 체제가 출범하면서 기업들에도 국제표준의 중요성이 급속히 부각됐다. 특히 디지털 TV,DVD,홈네트워크,이동통신과 같은 전자나 통신분야는 개발단계에서 국제표준의 선점이 제품 개발의 성패를 좌우하므로 기업마다 자사 표준기술을 국제표준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중국이 전 세계 DVD 플레이어의 70~80%를 생산하면서도 대당 원가의 40%를 특허 사용료로 지급하고 있어 독자적인 표준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국제표준이 산업경쟁력과 직결되므로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이해와 관련된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채택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동영상압축(MPEG) 기술을 국제표준에 반영시켜 6000만달러의 특허료 수입을 올린 사례가 있다. 따라서 이제는 기업들이 국제표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표준을 염두에 둔 기술개발 전략 수립, 표준 선점을 위한 국제표준화 활동 강화 등에 역량을 집중하여야 할 때다. ▷사회=국제표준화 활동이 산업정책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 의원='표준'은 국경과 인종을 넘는 '산업 분야의 만국공통어'가 됐다. 표준경쟁에서 밀리면 아무리 좋은 제품, 기술이라도 그 효용성을 잃게 된다. 또 WTO의 기술장벽협정(TBT) 발효 이후 기술과 표준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1999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세계 무역량의 80%가 TBT의 직·간접적인 영향아래 놓여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제표준화 활동에서 뒤처지게 된다면 수출을 근간으로 한 개방형 통상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로서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제·산업정책과 국제표준화 활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ISO IEC등 국제표준화 기구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사회=표준화 활동이 실제 기업 경영과 수익면에는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장병우 오티스엘지엘리베이터 대표=기업의 표준화 활동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경쟁우위 선점을 위한 핵심요소다. 기업의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특허와 실용신안 등 산업 재산권 확보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상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모든 프로세스의 표준화 활동 및 자사의 표준체계를 국제 표준에 반영시켜야 한다. 우리 회사는 제품개발부터 품질·서비스에 이르는 모든 업무과정의 기준을 '국제 품질시스템'에 준해 표준화해 놓았다. 특히 엘리베이터는 안전과 직결된 품목이므로 전 세계가 IEC에서 제정한 국제표준을 자국의 강제 기준으로 그대로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라 제품 개발단계부터 전략적으로 표준에 대응하고 있다. ▷사회=정책 당국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는 표준 선진국에 비해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특히 민간부문의 표준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펴야 한다고 보는가. ▷박세광 경북대 교수=민간부문의 표준화 활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표준화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현재 국내의 국가표준이 양적으로는 2만여종으로 선진국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국가규격이 일반기술 위주여서 새로운 수요나 신성장 분야 표준화 수요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또 선진국과 달리 정부 각 부처에서 운영하고 있는 강제기술기준과 국가표준이 일치하지 않아 기업체 입장에서는 중복되는 검사나 규제 등으로 인해 부담이 가중되기도 한다. 국제표준화 활동이나 민간표준 교육이 단기적으로는 기업이나 국가에 이익을 주지 않더라도 현재의 WTO 체제 하에서 무역상 기술장벽을 국제표준 활동 등으로 풀어가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국제표준화 활동의 참여가 요구된다. 정리=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