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기뻐하는 것이 보기 싫어서 공부를 일부러 하지 않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미운 상사가 승진할까 봐 일을 대충대충 하는 직원들도 있다. 남편이 너무 사랑해줄까 두려워 화장도 하지 않는 아내, 아내가 즐거워하는 꼴이 보기 싫어 휴일에도 밖으로 혼자 도는 남편도 있다. 이런 행동들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심리현상을 '수동적 공격성'이라고 부른다. 남에게 대접받지 못하거나 억압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대의 힘이 강하면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 불안감이 또 다른 피해의식을 부른다. 피해의식,불안감,분노 등의 악순환이 간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수동 공격성의 심리다. 자신의 의사를 스스로의 원칙이 아니라 남의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레드오션적 사고방식이라고 하겠다. 레드오션은 전쟁과 경쟁의 논리다. 내가 더 인정받고 대접받아야 하는데 남에게 그 자리를 뺏기니 괴롭고 그렇다고 대놓고 싸울 수 없어 '이상한'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심리의 이면에 깔려있는 것은 짝사랑이요 애정결핍이며 '배아픔'이다. 이런 수동적 공격성이 인터넷 시대를 맞아 더욱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이나 인터넷 미디어의 각종 게시판은 수동적 공격성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자신이 마음에 안드는 의견이 여론을 주도하는 것이 싫어 익명으로 욕설담은 댓글을 주렁주렁 다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또 블로그나 게시판을 열었다가 별 반응이 없으면 어느날 갑자기 폐쇄해버리는 것도 마찬가지 예이다. 이런 행동들은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익명 투서를 여러 곳에다 매일 수십통씩 보내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협회 같은 새 모임을 만들었다가 자기 마음대로 닫아버리는 일을 자주 할 수 있을까. 최근 '삼성 때리기'를 시작으로 다시 번져가는 반(反)기업 무드에도 이런 수동적 공격성이 깔려 있다.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가 묘하게도 가장 죄많은 회사로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법정에서 해결될 일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각종 비판도 수동적 공격성의 발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세계 대부분의 정부와 기업이 붙잡고 있는 화두인 혁신(innovation)을 폄하하는 사람들 중엔 단순히 '이 정부가 잘되는 꼴이 보기 싫어서'가 주된 이유인 경우가 더 많다. 기업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경쟁자가 내놓은 아이디어면 무조건 반박하고 나서는 회의풍토가 여전하다. 분명한 것은 수동적 공격성이 치유해야 할 병리현상이라는 사실이다. 양창순 박사(신경정신과)는 "수동적 공격성은 자신이 인정받고 싶어하는 나르시시즘의 발로"라며 "개인들이나 가족의 경우 이 문제를 느슨한 간섭(loose integration)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필요한 간섭이나 강요,충고를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설명이다. 기업 성장을 축으로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려면 우선 이런 수동적 공격성부터 치유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능동적 공격성'을 가진 사람만으로도 갈등은 충분히 증폭되고 있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