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노버(롄샹)는 컴퓨터 가격을 떨어뜨리는 저가전략이 아니라 품질로 승부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R&D)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10여년 전의 삼성전자를 닮았죠. 삼성도 끊임없이 기술개발한 결과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지난해 미국 IBM의 PC사업 부문을 인수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중국 PC업체 레노버(옛 이름 롄샹) 창업자인 류촨즈 롄샹홀딩스 회장(61). 제8차 세계화상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온 류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레노버의 경영방침을 이같이 설명했다. 레노버를 델컴퓨터,휴렛팩커드(HP)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PC 메이커'로 키워낸 비결과 비전도 차분하게 말했다. 류 회장은 IBM PC사업을 인수한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는 "인수합병(M&A)이 잘 돼 늘 웃고 다닌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주위의 우려와 달리 실적이 좋고 직원 간 융화도 상당히 잘 이뤄지고 있다는 것. 류 회장은 "많은 투자자는 레노버가 인수 후유증으로 2년 정도 적자를 낼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오히려 실적이 좋아지고 있다"며 "이번 회계연도 1분기(4~6월) 매출이 전년동기에 비해 6%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M&A 성사 뒤 으레 불거지는 기업 내부의 갈등 문제도 순조롭게 풀리고 있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감원하지 않고 오히려 증원을 해 문제를 해결했다"며 "철저한 분석을 통해 IBM 출신과 레노버 임직원이 상호보완할 수 있도록 역할을 분담했고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본사를 베이징에서 뉴욕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산'에는 저가 이미지가 강한 탓에 '차이나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가 붙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류 회장은 "레노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 증거로 올해 중국에서 레노버 매출이 50% 이상 증가한 점을 들었다. 그는 "중국인은 국산 외국산을 따지지 않고 브랜드 품질 등 실속을 따져 물건을 고른다"며 "2년 전만 해도 델컴퓨터의 공세로 힘들었으나 지금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류 회장은 레노버의 고성장 비결로 '국가의 보호를 덜 받은 점'을 꼽았다. 레노버가 1984년 류 회장 자신이 몸 담았던 국책연구소 중국과학원의 투자를 받아 설립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다소 흥미로운 주장이다. 하지만 그는 "국가가 직원 임용에서 경영방침까지 다 정해주는 '계획경제체제 내 기업'이 많았으나 레노버는 이런 기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류 회장은 "고작 자본금 3만달러를 가지고 동료 11명과 함께 회사를 설립했는데 한 달 만에 사기를 당해 자금난에 봉착한 적도 있다"며 "손목시계까지 팔아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80년대만 해도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게 무척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같이 출발했던 기업 가운데 살아남은 곳이 거의 없다"고 들려줬다. 류 회장은 2001년 레노버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40대인 양위안칭에게 넘겨주고 레노버의 지주회사인 롄샹홀딩스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