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블루오션의 세상입니다. 누군가가 앞서 연구하면 어마어마한 '성과'가 기대되는 영역이 많기 때문이지요. 우수한 청소년들이 과감하게 도전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36세의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 '세상을 빛내라'는 뜻이 담겼다는 이름처럼 그는 지금 전 세계 생명과학계에서 '빛나는' 별로 주목받고 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이름도 생소한 '마이크로 알앤에이(mRNA)'라는 생명과학 분야 연구를 통해 사이언스,네이처 등 해외 과학 저널에 무려 1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힘입어 그는 국내 과학자들이 최근 3년간 영향력 지수(IF) 10 이상의 해외 저명 저널에 발표한 논문 수 집계(과학기술부)에서 총 6편으로 1위에 올랐다.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모두 김 교수의 뒷줄에 섰으며 가장 촉망받는 과학자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mRNA'라는 분야에 뛰어들어 신세계를 개척했다는 게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RNA는 유전자의 명령을 받아 각종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중요한 물질. 이 중 mRNA는 크기가 아주 작은 것을 말하며 전 세계 생명 과학계의 핫 이슈로 부상했다. 김 교수의 연구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mRNA는 김 교수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서울대 연구교수로 부임할 때인 2001년만 해도 거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당시 쓸모없는 RNA 조각에 불과하다며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과학자들도 있었지요." 김 교수는 이런 분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 "부임하며 새 연구 주제를 찾고 있던 차에 mRNA가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했어요.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러나 3년 계약직의 새내기 연구교수에게 이 연구는 시작이 곧 난관이었다. 연구비를 확보할 방법이 없었다. 예산이 전혀 없어 주위 교수들의 도움을 받거나 사비를 털어 연구비로 써야 했다. 연구교수는 정부에 연구비를 신청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규정 때문에 지난해 조교수로 임용될 때까지 예산은 한 번도 신청해 보지 못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항상 일을 즐겁게 했지요. 이런 환경도 연구 생산성을 결코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노력의 결과 네이처 등에 잇따라 논문을 쏟아냈다. mRNA를 바라보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시각도 빠르게 바뀌었다. 새내기로서 호된 경험 탓일까. "우리나라에도 미국처럼 새내기 과학자들에게 3년 정도 시드머니를 제공해 주는 제도가 도입됐으면 해요." 어린 시절 읽었던 책에서 그리스 시대 과학자와 수학자들의 이야기에 감명받아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김 교수.그는 평생 과학자로 남겠다는 생각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잠시 다른 진로를 생각하다가 손에 남아 있는 차가운 피펫의 감촉이 그리워 금세 실험실로 돌아와야만 했던 게 유일한 '외도'라면 외도였다. "이공계를 가지 않겠다는 학생들이 늘어나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이럴수록 잠재력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제공되는 셈이라고 봐요. 이공계는 드러나지 않는 미지의 것들을 탐구하는 곳이고 그만큼 개척할 여지도 높지요. 과학은 또 열정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너무도 큰 매력이 있는 분야예요."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글=장원락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