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6시30분께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의 김종빈 총장 집무실.법무부 검찰국 소속의 한 검사가 방문을 두드렸다. 한 손에는 김 총장을 수신자로 한 A4용지 2장짜리 공문이 들려있었다. 공문은 다름 아닌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하라'는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서.10여분 뒤에는 대검 기자실에도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가 팩스로 전해졌다. 헌정 사상 첫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이처럼 긴박하게 이뤄졌다. 13일 검찰은 물론 온 나라는 두쪽으로 갈라진 채 하루종일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 여진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법적으로 엄연히 보장된 권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것은 왜일까. 참여정부의 실세 '정치인'으로 통하는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검찰에 대한 '정치적 외압'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이날 실시한 인터넷 투표결과(오후 3시 현재)도 이 같은 여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참가자의 69.9%(2942명)가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이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천 장관의 정치적 행보는 비단 이번뿐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는 '한마디 말'로 법원쪽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런 분들이 대법관이 돼야 한다"며 대법관 후보 4명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고 나선 것.비공개 서면으로 후보자를 추천토록 한 대법원 내규를 정면으로 어긴 셈이다. 천 장관은 "사적인 자리에서 '사견'을 말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시중에서는 이들 거명 인사의 대법관 임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천 장관은 전날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없는 경우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며 "공안사건에 대해서도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하며 여론 등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천 장관의 말처럼 사법기관의 법집행은 여론의 눈치를 봐서도 안 되겠지만 정치권의 입김에 좌우돼서도 안 될 일이다. 김병일 사회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