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콧수염‥석혜원 <메트로뱅크 부지점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석혜원 < 메트로뱅크 부지점장 marianneseok@lycos.co.kr >
우리나라에서도 희고 긴 수염이 권위의 상징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여성들이 외출 전 거의 화장을 하듯 남자들은 면도를 한다.
하느님께서 쓸데없이 수염을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을까.
하지만 아직도 수염을 고집하는 민족이 있다.
중동에 사는 남성은 대부분 콧수염을 기른다.
턱수염까지 기르는 남성도 있다.
그들은 지독한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인해 모래가 콧속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콧수염을 기른다고 한다.
또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콧수염을 길렀는데 이슬람 교도들이 그 모습을 닮고 싶어서 콧수염을 기른다는 말도 있다.
이유야 무엇이든 아직도 중동 남성들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고,그래서 콧수염은 그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몇 년 전 저녁식사 모임에 참석하려고 한 음식점에 갔다가 사우디아라비아은행의 동아시아지역 본부장이었던 분을 만났다.
우연한 만남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뜻밖에도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전에는 한 번도 콧수염 기른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인생관이 달라져서 도를 닦고 있나? 아니면 예술가처럼 보이려는 것일까?'
콧수염을 기른 이유를 물어볼까 말까 망설였다.
그런데 나처럼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는지 먼저 답을 해 주었다.
"다음 주에 사우디로 출장 갑니다. 콧수염을 기르면 그쪽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서인지 일이 잘 풀리거든요. 그래서 출장 계획 잡히면 한 달 전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해요."
역시 프로 비즈니스맨이다.
콧수염은 중동 남성의 트레이드 마크고,중동에 가서 '내가 너와 친구'라는 마음을 나타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표현 방법이 있겠는가.
더구나 그들이 우리나라 남성들은 콧수염을 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한 달 전부터 출장 준비에 들어가는 성실함에 틀림없이 감동하리라.
콧수염 덕분이었을까? 이분은 1997년 경제위기 후 다른 나라 은행들이 우리나라 은행에 돈 빌려주기를 피하고 있을 때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중동자금을 들여오는 일을 성사시켰다.
국제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먼저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세계 어디서나 한국인으로서의 당당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자긍심과 우리 방법만을 고집하는 것은 다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나라마다 서로 다른 문화나 관습 차이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문화나 관습을 존중해주는 넉넉함 또한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