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경 < 시인 > 하루살이는 전세계에 6000여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50여종이 있다고 한다. 성충 시기에는 먹이를 먹지 않으므로 '하루살이 목숨'이라고 비유될 만큼 수명이 짧다. 1시간에서 2∼3일,길어도 3주일 정도만 산다고 한다. 이런 하루살이가 한낮에는 숨어 있다가 해질녘이 되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것을 여름철엔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하루살이의 일생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바쁘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태어나자마자 연애도 해야겠고 결혼도 하고 새끼를 낳고 죽으려면 그 짧은 수명에 얼마나 바쁘겠는가? 그러니 시작과 동시에 결과도 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이렇게 바쁜 하루살이의 일생을 우리 삶 주위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나 정치권을 보면 이런 하루살이의 생태를 자주 느끼게 돼 입맛이 씁쓸하다. 긴 역사의 안목에서 본다면 나의 존재는 전 세대와 후 세대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의 돌덩이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꼭 하루만 살고 말 것처럼 허둥대는 일들이 너무 많다. 단군 성조(聖祖)로부터 이어져온 5000년 역사의 때를 내가 다 지우겠다고 큰소리치던 정치인이 어디 한둘이며,밀주 단속 나온 공무원같이 여기도 푹 찔러보고 저기도 푹 찔러보며 온통 구멍을 내는 일은 또 얼마인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고쳐보지도 못하고 대책도 못 세우면서 세상만 시끄러운 게 어디 이번만인가? 숲을 하나 가꾸려 해도 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나무를 가꾸는 사람도 있어야 하며 나무의 열매를 거두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일을 하자면 준비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도 있어야 하며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내가 아니면 두번 다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없는 양,그런 기회가 영원히 없는 양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결과부터 보자고 여기저기 들쑤셔 벌집을 만들어 놓는다. 이제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의 시대를 맞이해 그 누구에게도 잘못된 평가로 한(恨)을 만들어선 안 될 터인데 너무 쉽게 친일파를 만들고,반민족 행위자를 만들고,파렴치범으로 만들어 우리나라에는 어디 존경할 만한 인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칼을 휘두르는 것 같아 불안하다. 집단 폄하의 시대가 된 기분이다. 또 제 당대에 모든 것을 걸고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세우겠다며 생겨났다가 정권이 바뀌면 없어지고 새로이 생겨난 정당들이 얼마며,그렇게 높은 이상을 내걸었던 정권이 그 다음 정권에 의해 폄하된 것은 또 얼마인가? 무엇이 하루살이인가?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고 창피하다. 나는 아직도 '내 임기 중에 어떤 일을 함에 이 일의 기초만은 튼튼히 닦아놓겠습니다. 내 다음에 올 훌륭한 지도자를 위해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지도자를 본 일이 없다. 그런 지도자를 원하는 일이 어디 과욕인가? 조금 어두운 구석을 발견했다 싶으면 떼거지로 몰려들어 웽웽거리다가 아니다 싶으면 어느 수풀 구석에 숨었는지 그 많던 우국지사(憂國之士)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여름철 등불을 찾아 몰려들었다 그 등불 아래서 죽어 수북하게 쌓인 하루살이의 주검을 보듯 켜켜이 쌓여있는 역사의 하루살이 인물들을 무수히 본다. 우리는 하나의 징검다리를 놓듯 그렇게 역사에 대해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하나의 돌덩이이니 내 다음의 돌덩이에게로 걸음을 옮기기 가장 좋게 놓이는 법을 익혀야 한다. 내 다음 돌덩이보다 너무 크거나 혹은 너무 작거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곤란하다. 가장 알맞은 보폭으로,가장 알맞은 크기로 우리 민족을 건너게 해주는 징검다리의 돌덩이 하나로 말이다. 그런 지도자를 우리는 원한다. 징검다리가 돌덩이 하나로 이뤄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