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모씨(23).그는 인터넷 토론방에서 활약하는 논객이다. 그의 필명은 '백전백승'.정치 경제 어떤 분야든 토론이 벌어지면 상대방을 옴쭉달싹 못하게 한다. 온라인에서는 '천재'로 추앙받는 그이지만 현실은 참혹하다. 대학은 근처도 못 가봤다. 직업도 없다. 부정기적인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간신히 번다. 그가 제도권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무렵.PC 게임과 게임 프로그래밍에 몰두하다 성적이 곤두박질 쳤다. #2.중학교 1학년 시절 미적분 문제를 능숙하게 풀어 '수학 천재'로 통했던 곽모씨(29).지방대를 겨우 졸업한 후 인천 소재 중소기업 전산팀에 근무하고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자신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항공우주국(NASA)에 근무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학만큼은 전교 1등 자리를 도맡아했지만 국어 영어 등 다른 입시과목 성적이 나빠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했다. 평준화 교육이 천재들을 죽이고 있다. 특히 산업 및 경제 구조가 지식산업 중심으로 고도화되고 있는 요즘 평준화 교육으로는 더 이상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분업과 협업을 중시하는 제조업 위주의 산업발전 단계에서는 '집단 교육'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만 창의력을 바탕으로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하는 선진 경제사회로 도약하려면 개개인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특성화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을 이끌 머리가 없다 한국 학생들의 평균적인 능력이 뛰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지난해 12월 발표된 '학업 성취도 국제비교 연구(PISA)' 결과에서도 잘 나타났다. 학생 전체로 보면 40개국 가운데 문제해결력 1위,읽기 2위 등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평준화 교육의 장점이 제대로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1등'이라는 화려함 뒤에 가려진 사실이 있다. '상위 5%' 학생만을 떼어내 비교하면 문제해결력 3위,읽기 7위 등으로 크게 떨어진다. 전반적인 학력 수준은 높았지만 최상위권 학생들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 우천식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기업 경제부장은 최근 KDI가 교육개혁포럼과 공동으로 발간한 논문집에서 "교육은 근본적으로 배타적이고 경쟁적이기 때문에 공공재가 될 수 없다"며 "현행 평준화 제도하에서는 A급 인재를 제대로 키우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우수 인재들의 '교육 엑소더스'도 한국 교육에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대원외국어고 민족사관고 등과 같은 외국어고와 자립형 사립고들은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해외유학반을 편성했고 이를 통해 수많은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대원외고는 올해 해외유학 프로그램(Global Leadership Program)반 학생 49명 전원을 해외 대학에 진학시켰다. 민족사관고도 올해 27명의 유학반 학생 전원을 미국 대학생으로 만들었다. 김일영 대원외고 교감은 "똑똑한 학생들은 '붕어빵 교육'을 시키는 한국 대학은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도체로 번 돈 해외로 줄줄 해외 유학생은 해마다 늘어 지난해 39만4000여명에 이르렀다. 이에따른 유학 및 연수 비용도 갈수록 늘고 있다. 무역협회 산하 무역연구소가 올해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에서 지출된 교육비는 51억5000만달러로 2003년 46억6000만달러보다 10.5%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동반 가족의 생활비 등을 포함할 경우 올해 유학.연수경비는 1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외국 학생들이 한국에서 교육비로 쓴 돈은 2억달러 선에 그쳤다. 반도체 휴대폰 수출 등으로 벌어들인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 293억8000만달러의 6분의 1가량이 교육비 명목으로 해외로 빠져나간 것이다. 교육비 통계에 잡히지 않는 현지 체재 비용을 더하면 해외로 새나간 교육 관련 비용은 이보다도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호'를 살리기 위해서는 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는 지난해 어학 연수나 외국 유학 등으로 해외로 빠져나간 교육 지출이 국내로 흡수될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2조7000억원 늘어나고 국내 일자리가 9만5000개 더 생겨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