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빈 검찰총장 사표] 독오른 검찰, 여당과 정면충돌하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종빈 검찰총장이 14일 저녁 '전격 사퇴'라는 초강수를 던져 '정치적 외압'에 대한 검찰 차원의 반발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김 총장이 이날 사표를 제출한 직후 한 의원에게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조직을 추스를 수 있겠는가"라고 밝힌 것에서 그의 불편한 심기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검찰에 정치적 외압을 행사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당장 야당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사퇴 배경
정상명 차장 이하 대검 간부들은 기자회견이 열린 이날 오후 5시까지도 김 총장의 사퇴결심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강찬우 홍보담당관은 김 총장을 대신해 수사지휘권 수용의사를 밝히면서 "김 총장은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시간 김 총장은 천정배 장관에게 사직서를 보냈다. 그만큼 김 총장의 고민이 깊었다는 얘기다. 김 총장의 사직서 제출은 천 장관이 지난 12일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지 꼭 48시간 만이다.
김 총장의 사퇴는 무엇보다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재발동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항명'의 뜻을 담고 있다. 여당 실세로 통하는 천정배 의원이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후 끊임없이 제기됐던 정치 간여 우려가 결국 사상 초유의 수사지휘권 행사로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의 피의자 구속여부를 지휘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심히 유감스럽다"며 검찰의 반발 기류를 대변했다.
중간간부 이하 평검사들의 용퇴압박도 김 총장의 사퇴를 재촉했다. 검사들은 "장관의 지휘가 위법이 아니므로 수용을 하되 앞으로 총장으로서 검사들을 지휘할 수 없으므로 용퇴해야 한다"며 김 총장을 압박했다.
김 총장은 지난 12일 저녁 불구속수사 통보 직후 사실상 사퇴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참모들에게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조직의 안정을 위해 일단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만류에 주춤하다 결국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대명제를 수호하기 위해 '사퇴'란 카드를 꺼낸 셈이다.
◆검찰-여권 정면 충돌 불가피
수사지휘권을 수용한 이상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수사강도는 그 어느 때보다 세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총수가 불명예로 중도하차한 검찰과 여권의 정면충돌도 불가피해졌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이번 장관의 조치는 검찰총장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며 "수사지휘권을 정치인인 법무부 장관이 계속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보이고 그렇게 되면 검찰 독립은 물건너 간다"고 강조했다.
보수·혁신 세력 간 갈등도 재연될 조짐이다. 일선지청의 한 검사는 "강 교수를 구속수사하지 못할 경우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라는 등의 친북주장이 가벼운 범죄로 인식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천 장관도 결국 검찰에 상처를 입혔다는 비난여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당장 천 장관의 동반사퇴설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