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 특허청장 jongkkim@kipo.go.kr > 진시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분서갱유(焚書坑儒)나 불로장생을 위한 그의 집착은 폭군의 전형을 보여준다. 유교를 숭상했던 한(漢)나라의 기록들이라 과장됐을 수도 있지만 진(秦)나라의 첫(始)황제는 천세만세를 이어갈 통치 기반을 마련한다고 과욕을 부렸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중국 최초로 통일을 성사시켰고 도량형,법률,문자까지 통일하는 치적을 남겼다. 사상까지 통일하려던 무리수로 인해 그의 사후 4년 만에 나라는 망했지만 2200여년 전 이룬 국가표준 확립의 대업은 오늘날에도 큰 가르침이 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척관법에서 미터법으로의 전환을 매우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가고 있다. 1987년의 입법에 따라 시행을 강제해 온 결과 이제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생활 속에도 미터법 사용이 보편화하고 있다. 오랜 기간 익숙하게 써 오던 도량형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다. 영국은 복잡한 화폐 단위 1파운드=20실링,1실링=12펜스를 1971년에 십진법인 1파운드=100펜스로 변경했으나 그후 얼마간 큰 불편을 겪었다. 한 할머니는 십진법 계산이 너무 어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1961년 법정계량 단위로 미터법을 도입했다. 지난 83년에는 토지나 건물의 면적단위로 평(坪)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조처도 취했다. 그런데 지금도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발상지인 중국도 버린 척관법에 연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평이 ㎡보다 면적 단위로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강변하는 이들이 있다. 이것은 착각이다. 길이를 미터법으로 익혀온 세대에게는 면적도 당연히 미터법이 더 편하다. '아산 탕정지구 510만평 택지개발 계획'을 접하는 대부분의 국민은 그 규모를 가늠하지 못한다. 하지만 가로 세로 4km인 16㎢는 짐작이 간다. 작은 면적은 평수가 편하다면서 마구잡이로 쓰고 있지만 이 또한 착각이다. 30평보다는 가로 세로 10m인 100㎡ 아파트 면적이 훨씬 정확히 그려진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표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헌법에도 "국가는 국가표준을 확립한다"고 했다. 19개 부처가 운영하는 86개 법률상의 표준을 통일한다거나 측정표준 연구를 확대하는 등 할 일이 많지만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법정 계량단위 사용이라도 확실히 정착시켜 보자.캠페인만으로는 안 되니 위법행위에 대한 벌칙을 강화해서라도 고치도록 해야겠다. 정부는 기술표준정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국민들의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표준의 날(10월14일)을 맞아 내 직장,내 주변에서만이라도 비 법정단위,특히 척관법만은 완전히 폐기처분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